오늘 하루, 내 생활 컨셉은 '바쁨'이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달력에 빨간 숫자로 적혔지만, 잃어버린 휴일이 되 버린 날
학교에서 어린이 날 큰 잔치가 열렸다. 과 학우 전체가 심화 또는 소모임으로 나뉘어 스무 개의 부스를 설치하고 간단하게 팀을 짜서 하는 운동회, 전통 의복 체험, 인간 두더지 게임 등 이벤트를 마련하고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렸다. 사실 기대하진 않았다. 작년에 처음 겪어 본 이 행사는 너무나 조용하고 단편적인 공연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일까, 학교에만 살다보니 바깥에는 우리가 어찌 보일지 몰랐는데 엄청난 홍보와 준비덕에 가족 단위의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나는 스탬프 13개 이상을 모으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 소모임. 심화 일도 있었지만, 인원이 딸리는 소모임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 덕에 심화 뒷풀이에 뻘쭘해서 참여하지도 못하고.) 오전에는 엄청난 대가족들이 몰려서 스탬프 없이도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오후에는 스탬프 13개를 받아 온 사람들의 대공습이 이어졌다. 포토포인트를 꾸미기 위해 가져갔던 나의 요술풍선들은, 점심 먹고 가 보니...이미 옛날에 빈 봉지가 되어있었고, 포토포인트가 된 벤치에 붙인 장미와 풍선아치, 풍선 인형들은 조금씩 너덜해져가고 있었다. 정말 내 정신을 어디로 보냈는 지 알 수도 없었던.. 아이스크림 하나 뜯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오후를 나고 지금까지 침대에 누워 잤다. 선크림 바른 채로 세수도 안 하고 저녁도 안 먹고, 연휴라서 기숙사에 사람도 없는데. 일어나보니 밥 먹을 사람이 없어 혼자 비상식량으로 사다 둔 비빔면을 한 봉지 뽀글이 해서 먹었다. 속이 그득하다.
나에게 잊고 싶지만 안 잊혀질 것 같은 상처를 준 사람. 그 사람과 계속 함께 했다. 편하게 지내자고 내가 먼저 참지 못해 연락 해 놓고선 기대라도 하고 있던 건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전처럼 지내기란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만 든다.
엄청나게 바쁜 하루였는데 수도없이 들이킨 알콜 때문에 아직까지도 몸이 힘들어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눈가에 일어난 틱현상이 계속 느껴지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지금 나 따위는 떠올리지조차 않고 있을 그 사람 생각이 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분명, 지금 내게 작은 용기만 있었다면- 어두운 길을 헤쳐나갈 - 편의점에서 또 소주 한 병을 사 왔겠지.
오히려 편한 친구가 나을 지도 모른다고, 잃고 싶지 않은 좋은 사람이라며 놓아주자고, 이미 내가 놓을 거도 없이 저 사람 마음은 산을 넘어 버렸는데 나 혼자만 가느다란 실 같은 마음 잇고 있어선 안된다고 몇 번을 다짐하다가 다른 여자 친구들과 스스럼 없이 대하는 그 사람을 보면 순간 화가 치밀어서 나도 보란 듯 다른 오빠들과 남자 친구들과 신나게 장난치면서 여기 좀 봐달라고, 나 좀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대고 있단 말야..
차라리 네가 나를 못 잊어하고 내가 너를 떠난 거라면 훨씬 쉬웠을테지
술도 안 마시고 이렇게 일기를 쓰는 내 가슴이 정말 하..
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 누군가에게 문자가 왔다. "술 마시러 갈 사람?" 별로 내 인생에 플러스가 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진솔해지는 분위기 때문인가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도 되는 건가 고민 좀 해보고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