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카드 충전을 하면서,
친구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큰 일에는 대범했지만 은근히 작은 일에는 소심했다.
일테면 길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거나,
매번 지하철을 타고 다녀서 낯선 버스를 타는 게 두려운 일따위들.
덩치에 안 맞게 그런 작은 일을 하는 것을 꺼렸다.
카드 충전도 마찬가지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용돈이 다 떨어져 완전 거지 신세.
카드 충전을 2000원밖에 할 수 없었던 상태였는데,
그걸 못해서 친구가 해줬다.
하면 할 수 있었지만, 그냥 친구가 자기가 해준다고 했다.
친구의 말.
그랬다.
누군가에게 쉽게 물들고 익숙해지는 나로써는,
그 존재에 대한 상실감을 크게 느끼는 편이었다.
예전 남자친구도 그랬다.
지금이야 혼자도 잘 다니고 잘 서 있지만,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똑바로 서 있지 못해 남자친구가 잡아주기 일쑤였다.
그리고 은근 추위도 많이 타는 편이라,
이따금씩 남자친구가 옷을 벗어주기도 했다.
그 말에 내가 남자친구에게 그랬다.
"나중에 오빠 없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팔 다리에 꽉 힘주고 지하철 손잡이를 잡으면 넘어질 일은 없었다.
추우면 옷을 껴 입고 다니면 됐다.
그때는 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지나치게 상대방에게 의존한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떤 사람과 잠깐 인연을 맺게 된 적이 있었다.
나보다 2살 많은 그 사람은,
학교 선배였다.
그때도 전경이었고 지금도 전경으로 군 복무 중이다.
일방적인 마음이 부담스럽고,
헤어짐으로 인해 텅빈 마음을 무턱대고 만난 사람으로 채우는 것같아,
결국 돌아서 버렸지만.
전경이라 그랬는지 다른 군인들보다는 연락이 쉬웠다.
하루에 한 번?
하루에 한 번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5번정도는 연락을 했던것 같다.
생각해보니, 문자는 거의 매일 주고 받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결국,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 돌아서 버렸다.
사귀는 건 아니었으니 이별을 통보할 필요도 없었지만,
뭔가 어색하게,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사이.
은근한 후유증이 있었다.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나자,
어느샌가 그 사람에게도 물들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 사람이 했던 말이나.
그 사람과 같이 다녔던 동네나,
그 사람의 하루 일과 따위들.
그런 걸 떠올리고 있었다.
비록 사랑은 아니었고, 스쳐지나는 인연이었다고 해도,
그 사이 나는 또 그 사람에게 적응되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사실 무섭고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쉽게 물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럴까?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처럼 너무 상대방에게 의존하는 건.
역시 홀로서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서기라는 건,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도 꿋꿋이 서 있을 힘과,
텅빈 벌판에 혼자 있어도 버틸 수 있는 강한 마음과,
때로 지쳐 주저 앉고 싶을 때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용기.
그 외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
언제부터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외쳤는데.
아직도 이렇다.
홀로서기라고 해서 무턱대고 혼자 모든 걸 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때로는 그런 홀로서기가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강해지자.
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