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가 서 있는 곳은 만감의 교차점이지만
오늘은 그 위에서 외줄이라도 타고있는 듯한 기분이다.
'용기의 부재' 그리고 괜한 걱정으로 아무런 도전도 못하는 패배성의 온상지
어디가 시작인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바빴다, 아니 바쁘고 싶었다.
그래서 모충동 라이프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바람직한 생활의 연속
늦어도 아침 6시에 일어나 따뜻한 물도 안 나오는 인내관에서 추위에 떨며 샤워하고 책을 읽고 컴퓨터도 하고, 아침을 챙겨먹기 위해 나름 부단히 노력했고 그렇게 방을 나가면 저녁 시간에나 겨우 돌아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새벽 1시 즈음 다시 침대로
낮잠 한 번 잤으면 소원이 없었어
수업 시간에 쓰러지지 않게 마시지도 않던 커피를 주구장창 마셔대니 속은 하루 종일 쓰리고 머리는 띵하고 입과 혀는 꼬이고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라며 나를 보채도 나오는 생각은 하나없고
엘리스의 비합리적 사고를 다시 말한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왜, 라는 질문은 둘째치고 열심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머리가 텅 비어있다.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아는 게 없으며 두뇌회전이 빠르지도 않고 약지도 못하다.
이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몇 년의 노력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 내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너무 씁쓸하다. 이제 19년 7개월 20일이라는 (의존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시간과 함께 서 있는 거 뿐인데 흘러가는 나날에 무색할 정도로 무식하다.
헛똑똑 이 말이 이렇게 실감될 줄이야
스스로를 낮춰 말하면서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줬으면
실제로 그러한 위로가 칭찬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기대하고 새벽이 되면 부끄러워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고 안에서 어둥어둥 헤엄치다가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며 잘난체해서 능력의 한계점을 수두룩하게 만들어놓고
스무살이란 나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한다며
부끄러운 나를 무마하려고 노력했다.
이 점에서 정말 열심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도록
책을 읽으면 모두 해결이 될 줄 알았다.
미친듯이 방학 내내 책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 동안 내 주변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벽돌로 차곡차곡 쌓여버렸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데,
바깥에서 보는 나의 성은 온통 "할 수 있다"로 도배되어있을 지 모르지만 내부는 위태위태해서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상태
자신이 없다.
가슴과 머리는 솔직해지라며 말한다
그건 내가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스스로 부인하고 있었지만 수 많은 치부들과 이러한 고민들을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염려해보라는 완곡한 격려다.
고맙다. 은경아.
어떻게라도 나를 정리하고 싶었는데
모니터의 밝은 불빛과 키보드 소리는 룸메를 불편하게 하고 더 나아가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한 발 짝 더 떼는 건 또 다른 새벽에 필요한 과업
結
이렇게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주절주절 거리는 건
술을 마신 용기로 나만의 작은 성에서 잠깐 길 밖으로 나온 덕택에
덧붙이기
결국 이번 학기에도 파란색 직사각형을 달력에 넣기로 했다.
술 마신 날짜만 표시하기
1학기는 술의 학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일주일에 최소 두번에서 많게는 여섯 번 까지
내 달력의 모든 숫자 앞에는 길쭉한 직사각형을 그려놓았다.
이번에는 어찌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술의 학기는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