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병
나는,
나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아픕니다.
누구도 내가 아프단 걸 알지 못하고 나조차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은 엄연한 병입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회색빛으로 버리고 마는,
내가 품는 생각들이 세상 모든 것들을
세피아 빛으로 물들이고 마는,.
정말 단 한순간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마치 날 처음 보는 것처럼 인사했으면,
내가 달려온 길, 그 발자국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인생이란 수정이 불가능하다.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잠이 올 듯 말듯, 망설이는
우울한 밤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우리네 인생은
한 편의 소설,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다시 써주지 못하고
쓰슥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없습니다.
다만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을 뿐이고
여러 물감을 개어 고심 끝에 덧칠할 뿐입니다.
인생을 후회하는 순간,
지난날에 대한 회의감이 사무치는 순간,
나는, 이름 없는 병에 걸려 시름합니다.
나의 존재가 버거울 때
지나기 싫은 진흙같은 인생길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희망이라는 덧없는 연기와도 같은
판도라의 상자,
그 마지막 환상을 투여받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