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 아파트에 그 많은 창문 중 한개는 불이 켜져있기 마련인데,
싹다 꺼져있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3시에서 5시 사이, 한 두시간 쯤?
그 사이가 내 기상시간이다.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어느순간부터다.
바쁜일이 뚝 끊긴 1,2년 사이 생겨난 내 습관이자, 병이다. 병.
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좋은거지~하면서 타박을 놓는다.
아침이 여유로운 것이 하루를 찬찬히 준비할 수 있게는 하지만
그게 또 마냥 좋지만도 않다.
새벽까지 술마시고 3시에 잠을 자도 5시면, 그래 늦어도 6시에
어쨌든 알람보다는 먼저 깬다는 거.
미리 알람을 끄고 시계가 울지 않게 더 재운다-
잠이 사라진만큼 피로도 사라지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잠이 줄지,..."라고 말하는데,
내가 그 나이는 아직 아닌 것 같으니 이러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다-
'리듬'이 생겨난 거.
나도 생활에 리듬이라는게 생겨난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생각하면 중고등학교 때는 나름, 시험이라는 멍에로 내내 피곤했고
고3보다 빡센 대학생활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자고 깨는 시간에 습관이 생길만큼 쉴대로 쉬고 놀아,
이제야 나는 리듬감이 생긴거였다.
옛날 내가 살았던 시골 사람들이 시계없이도 도시보다 더
째깍째깍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만의 그 박자 때문일 것이다.
그 박자가 자라날 수 있는 '여유'라는 배양조건 덕분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구나' 하고 감사할 일인데,
'내가 배가 불렀군' 하고 채찍질을 시작한다.
아닌게 아니라, 젊어 고생할 때에 이렇게 찾아든 편안함에 감탄해야 하는 것이
사실 하루하루 불안하다. 폭풍 전야같기도 하고.
암튼 이런 장기간 지속되는 평탄함은 나에게는 불편하다. 처음이라 그런가?
뭔가 재미...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고민할 거리가 없으니까 일기거리도 별로 없다.
정말 사서라도 고생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습성은 밉상이다 정말.
그래도 어쩌겠나 걱정은 걱정이고 불안은 불안인 걸.
덕분에 새로운 일을 만드는 걸.
다행이 자꾸 움직이려고 하는 걸.
고마운 불안인 걸?
부딪히는 습성은 모난 부분때문에 생겨나는 것 같다.
둥글고 싶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본능이다.
모서리가 깍여 나갈때까지 달려와 부딪히고,
한쪽이 잘 다듬어 지면 또 모난 곳이 없나 혈안이 되어 찾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격정적으로 미워하지 않아 미움도 둥글,
뜨겁게 사랑하지도 못해 사랑도 둥글,
왠만한 일은 이해하려고 들어 슬픔도 원망도 둥글.
그렇게 둥글 둥글 해 질 것 같다.
그런 걸 아마..도.
연륜이라고 하지 싶다.
내 모서리는 멀미나는 봄을 지나 일부 깍여나갔다.
지금은 사포질 쯤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뭐,
그건 좀 덜아프고 여유로울 수 있지 뭐,
아직 남아있는 모서리가 많을테고,
지금 다시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으니
봄인지 여름인지에는 또 모서리를 찾아낼 것이고 멀미가 다시 올텐데
영원할리없는 평온을 눈 딱감고 즐겨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