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없이 쌓여가는 생각은 지나치게 이상화 되어간다.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넋놓고 듣다가,
저 애들이 저런 경험을 쌓아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는 동안 난 뭘했는지 생각해 봤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체육시간에 꼭 한번씩은 하고 지나가던 뜀틀 넘기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제대로 넘어 본 적이 없다..
운동신경이야 선천적으로 결핍됐다는 의혹을 받을만큼 젬병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뜀틀은 해도해도 잘 안됐다.
뜀틀로 체육 실기시험이 정해지면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고서
이번 실기는 최하점임을 미리 점쳤다.
인간이 언젠가 죽는 다는 걸 맞추는 점쟁이 처럼.
노력하지 않았으니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억울한 일이었다.
다른애들은 따로 특별히 연습하지 않아도 나보다 3배는 발달한 것 같은 운동신경 덕분에 잘도 넘는데 나만 남들보다 4배 열심히 해야 하는 처지가 참 딱했다.
결국 나는 지금도 뜀틀을 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굴러서 다리벌려 일어나기가 안된다고 (난 이건 잘했는데!ㅋㅋ)
악바리같이 죽어라 매달리던 내 친구는 뻣뻣함이 집안 내력이라는 유전적 결함을 극복해 내고
최고점수는 못받았지만 최하점수를 면했다.
그 친구는 악바리같이 지금도 달리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속도를 높이고 , 또 누구는 고도를 높이고 어떤 사람은 길이를 늘려야 한다.
모두 이루려고 하는 바가 다르다.
하지만 모두 지금의 '나'를 넘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것들 모두 '악바리같음'을 필요로 한다.
몰두하고 애쓰고 빠져들어야 한다. 시간은 결국 나를 끝으로 데려가겠지만
어떤 모습으로 끝에 서있는지를 정해주지는 않는다.
알려고 덤비지 않고, 몸과 맘을 사리고
상처받지 않는데만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실패해도 그만인 일들만 벌이며
그렇게 나는 인생의 뜀틀을 앞에 두고
학창시절과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모른다는 것, 잘 못한 다는 것은 매일 깨닫지만 알려고 애쓰지 않는다.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하기 싫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종목들이라
'에이, 그까짓거 그만 둬! ' 라는 선택을 반복한다.
주인공들만 바꾸어서 반복되는 갈등,
주제만 바뀌고 실패하는 계획,
년초에 있다가 중간도 못가 사라지는 목표.
넘을 생각은 애초에 없는 듯이.
뛰어는 본다만 결국엔 안 될거라고 생각하는 듯이.
인간이 결국 죽는다는 걸 점치는 점쟁이처럼.
오늘의 결심이 술기운이어서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