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의 실현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최고로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이기때문에
나는 좋은 뒷모습을 남기고 싶어 기를기를 썼다.
15일이 마지막 근무일이라 2월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내 몸의 모든 세포는 거기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후임이 구해지지 않아 근무일이 연장되면서, 사람들과 이곳의 일이 지긋지긋해 진 것은
아닌데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정말 정말 조금만 더 힘을 내자는 마라토너의 심정이었다.
이렇게 까지 내가 이별에 몰두한 이유는,
난 항상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지내다가도, 혹은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 이제는 왠만한 일은
문제가 되지 않을만큼 막역한 집단이어도 꼭 나가는 문앞에서 상처받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왜..왜?? 왜그럴까???
솔직히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지만 이유는 특별히 잘 모르겠다.
문제는 떠나는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는 감이 왔을 뿐이다.
일주일 후에도 한달후에도 그대로인 그 사람들의 일상에서 내가 분리되어져 나오는 작업은
나를 일년간 감싸왔던 소속감을 떨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갑자기 커다란 불안이 밀려와서
그만 예민해져 버리는 것 같다.
서운함에 민감해 지고, 제 3자가 되는 낯설음이 두려운 것이다.
이제 하루 남았다. 오늘 하루.
어제 오후에는 오늘 하루까지 올 힘이 정말이지 단 한개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어제까지 무사히 버텨냈고 오늘은 컴퓨터 정리작업만 남았는데 나는 또
그 짧은 시간에 무슨일이 벌어질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금요일에 컴퓨터 작업을 마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말았다.
불안함은 나를 완전히 뒤흔들어 어린애한테도 안어울릴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말았다.
한치앞만을 겨우보고 내 고집만을 부리다가 결국 또 민폐를 끼친다.
토요일 새벽...
그렇게 두렵던 마지막이 왔는데 오히려 덤덤하다.
이젠 더 잘해 볼 것도, 더 망가질 일도 일어날 시간이 없다는 위안이,, 새벽을 타고 스며든다.
일어서고 보니 내가 있던 자리의 얼룩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볼까봐 창피하기만 하다. 망할놈의 자괴감에 또 빠져들고 말았다.
됐다. 이제 시간이 더 지나 뒤숭숭한 이별을 '적당한 잊혀짐'으로 덮어주고
언젠가 다시 반갑게 만나 술한잔 할 일만 남았다.
늘 그렇듯, 아름답지만은 못한 이별이었지만 나 만큼이나 함께 했던 사람이
우리 이별을 위해 애써온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너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