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쓰리고 인것이다.
나는 쓰리고.
스나와치, 실험용 쥐 급의 취급을 받고이따.
주는대로 받아먹고 올해바뀐 입시제도 테스팅해주면 내 소명은 다한다.
그기 중요한기 아니고(중요하긴 하다만)
모의고사. 가채점 석차가 나와따. 대문짝 만하게 복도에 걸려있다(이름은 지워져있음 자신의 점수로 등수를 알 수 있음)
근데 솔직한말로 지난 2년 나 사실 많이 싸돌아댕겼엇다.
고1 올라갈때 내신 바닥이어서 그저 미달난 신설학교 지원해서(당시 비평준화)
꼽사리로 들어온 포항 이동고등학교.
우리중학교에서 딱 두명 왔엇다. 많이 외로워따. 그리고 여기 애들이 언어가 좀 다르다.
이런기분 처음 느꼈었다. 내가 쓰는 언어가 어렵다면서 막 조잘댄다.
지난번 무릎팍 도사에서 성시경과 강호동의 대화를 상상해도 좋다. 많이 유사하다.
정말 막막했었다. 선생은 들볶고 부모도 갈구고 친구도 업고
미친척하고 초대 학생회장 선거 출마해서 연설 멋깔나게 하고 친구없어요 ㅠㅠ 동정표 받아서 얼떨결에
당선
되버렸다. 그후로 애들이 중학교군으로 뭉쳐서 많이 갈구더라. 그러타.
태어나서 처음 친구없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따.
삶에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때 아마 내가 마비노기에 혼혈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우울증에 난 이미 손목 긋고 싸늘한 주검으로 남았을지도.
학교에선 자고 밤샘마비노기 테스트서버를 뛰었던 날들이다.
그리고 2학년. 이젠 아주 학교 출석률이 50%로 떨어진다.
2학년때 담임샘을 참 잘만난것같다. 정신과 가서 우울증 진단끊어서 그걸 다 카바 쳐 주셧다.
그때, 난 마비노기 테스트서버 마법사 서열1위 유지에 여념이 없었다.
학업. 그런건 안중에도 들어오지않았다. 그냥 피방알바로 썩다가 뒤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
러
던
어
느
날
접어뒀던 책을 폈다.
건강부터 심리, 등등의 전문적인 분야를 공략해나갔다.
그리고 깨달아버렸다.
내가 살아가는곳은
에린(마비노기에서 그안의 세계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햇볓을 보고싶은 욕망이 용솟음쳤다.
그렇다. 예전의 나를 되찾았다.
그리고 몇주 후, 호주 어학연수 기회가 있어서 다녀왔다.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대가리가 텅 비어도 자신감에 넘쳐나는 호주 학생들.
난 거기서 어디서 흘러나오는지모를 넘쳐나는 자신감을 배워왔다.
그리고 지금.
학교에서 잠들지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친구는 없다.
하지만 나하고 맞지않는 인간들이기에 , 여기서 친구를 만들 생각도 없다.
이제 수능 200일남짓 남았다.
모의고사 점수가 개판(400만점에 200)이다.
미칠노릇이다
그런데 학교 모의고사 가채점 석차를 보니 좀 스팩타클하다.
백사명중 사십오등이다
내 밑에 육십명. 인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