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닥치는대로 글을 썼다.
손에 집히는대로 책도 읽었다.
맘에있는 걸 글로 덜어내지 않으면 실타래가 엉키 듯 풀기도 어렵게 부풀어지는 것 같았고
무엇에라도 정신을 팔고 있지 않으면 온종일 한가지만 생각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어쩌면 좋을지 친구에게 묻고 싶었고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으면 떨쳐버릴 수 있을까 싶어서 지난주 내내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셔댔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좋을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답은 나에게 있는데 왜 나는 다른사람의 입을 통해 그것이 듣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는 답대로 실행하기 싫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복잡한 기분이 들어 미친 듯이 글을 썼던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에게 내 생각이나 글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나는 하나이지만 어느 곳에 쓰는가에 따라 그 내용과 글에서 느껴지는 '나'라는 사람의 느낌도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잘 아는 사람과 적당히 아는 사람이 섞여있는 싸이월드에 쓰는 글은 나도 모르게 수위조절을 하게 된다.
나를 잘 아는 사람만 있는 공간도 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솔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 '나'를 안다는 것은 내 얼굴과 목소리와 평소의 생각들을 알고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중 얼굴이나 목소리를 모르는 공간속의 내가 제일 꺼리낌이 없다.
어쩌면 내 얼굴이나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내 내면의 깊은 곳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을 알고 목소리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다듬어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 목소리 톤과 얼굴표정에 어울리는 생각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듬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마도 내 생각이나 내가 가진 어두운 면이 아주아주 부끄러운 모양이다.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 순간 왜 얼굴을 아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외로운지 알 것 같았다.
손가락질 받는게 싫고 상처받는게 두려워서 남들이 칭찬해 줄 만한 모습으로 사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진짜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 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나를 징그러워하고 꼴보기 싫어했다. 그 생각을 하자 심장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어째서 나는 나와 이런저런 추억이 있는 사람들 속에서 보다 이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지.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갑자기 그게 큰 혼란이 되어 덮쳐왔다.
막연히 나는, 솔직하지 못하고 나를 미워하고있는 것을 미뤄 짐작했는데 이렇게 결정적인 증거를 잡고나니
속이 시원한 한편으로 속이 쓰라린다.
정작 나를 온전히 보여주어야 하는 얼굴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왜 그렇게 못하고 있나.
좀 더 투명하게, 단순하게 살지 못하고 왜 그렇게 감추고 아닌척하려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