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헌책방에 간다는 건 구실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인사동 동동주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뭐, 나는 그랬다.
오랜만에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며, 내 친구는 대화가 어색해도 이해해 주라고 부탁했다.
와하, 나도 재수시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그거랑 똑같은 부탁을 했었는데!
그래서 그 말이 나는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그 기분 알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서는 별 얘기 안해도, 심지어 무거운 얘길 해도 나는 신나기만 한다는 말을 해 줄 것을 그랬다. 이야기꺼리 없다고 불편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또 어제까지 기운 빠져있던 내가 오늘 덕분에 살아났었다고 그 말을 한다는 걸 깜빡했다.
친구에게 내가 뭣 때문에 기운이 빠져있었고, 누구누구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고 고자질 하나 안하고도 속이 시원해졌다.
이렇게 사람을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함이 해소되는걸 보면 사람때문에 지친다고 사람을 피해다니는건 절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 일차방적식같은 결론을 내지 않은 걸 보니 나도 그동안 사람들과 부딪히며 멍만든건 아닌가보다.이차원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는 중인 것 같다.
그 사람은 내 공식에 안맞는 사람이었다.
그런 걸 가지고 저 죽일놈 썩을놈 해가며 내 까칠의 팔할을 떠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아무것에나 짜증이 났던 요 몇일간의 나는 그냥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에 걸린 상태였다.
쉽게 짜증내는게 실은 내 본모습이었다고 자학하지말고, 그냥 파란불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근데 원래, 짜증날 때 가장 견디기 힘든게 신호등인데..쩝.
친구가 물어봤다. 진짜로 화가날 때 어쩌면 좋으냐고.
뭘 어쩌~나도 맨날 그 고민인건데.
정말 분이 안풀리고 성이 날때는 어쩌면 좋을지 생각해봤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그냥 멈추길 기다리는 거다.나를 계속 사랑해주면서.
나를 사랑하면, 내가 아플만한 자학행위를 자제하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나를 위해서 그 분노는 잊혀지게 되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누구라도 미워하고 싶어 죽겠을 때는 나를 사랑하려고 기를 써야한다.
아 그리고 솔잎동동주는 비추다.
엄청 매력적인 조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술이라면 그냥 막 좋아라하는 우리 두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으니 그건 참 별로인거다.
그 술로는 도저히 과음을 할 수 없으니 어찌보면 진정 웰빙주이구나 싶다
인사동에가면 고구령에서 인삼동동주나 하는거다.ㅋ
친구덕분인지, 웰빙주 덕분인지 화창한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