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은 외국어로 된 책을 보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외국어로 쓰여진 책을 보면, 글자를 봐도 도통 무슨말인지 알 수가 없다.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요하다.
뭐 글자를 안다고 해서 그 책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가나다'를 깨우친 외국인이 '이빨까다' 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그것을 hit a tooth로 번역하고, 한국인들은 당황하거나 위기를 마주칠 때 치아를 두들기는 습성이 있다고 이해해 버리면 곤란한거다.
그런게 쌓이고 쌓이면 글의 장르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번역을 제 2의 창조라고 하는가 보다.
사람을 번역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행동을 나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짜증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는 게, 몸이 힘들어서 인지 싫어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편한 사람에게 하는 투정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그 사람을 번역할 수가 있다.
뭐, 왜 그러는지 직접 물어보고 부대껴보는 수 밖에 없다.
저 사람은 몸이 아플 때 저러는구나, 나는 울지
싫어하는 사람을 볼 땐 저런 표정을 짓는 구나. 난 어떻지?
편안한 사람에게는 나도 가끔 투정을 부리지. 하고 나의 언어로 다시 번역을 해야 한다.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따라서 두 사람의 스토리가 끊어져버리기도 하고, 장르가 로맨스가 되거나 혹은 공포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매맞아 마땅한 무개념한 일들이 저 친구의 나라에서는 별 뜻 없이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날이 덥다. 습하다. 불쾌지수는 최고조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잘못된 번역이 왕왕, 평소보다 왕왕 진행된다
오늘 나는 '못마땅'한 기분을 두어번 느끼다가, 내가 지금 제대로 된 번역을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을 했다.
'불쾌지수'라는 내 감정이 이입된 건 아닌지.
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람들이 나를 '온 세상이 깔깔깔'이라는 책으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
늘 즐겁고 싶은 작은 소망?
온세상이 깔깔깔은 어릴 때 내가 좋아하던 유머 모음집인데 말이 유머모음집이지 정말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으로도 도저히 웃어줄 수 없는 썰렁한 글들이 넘쳐나는 책이다.
그래도 모든 글에 피식피식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가끔 큰 웃음들이 숨었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글은 풍자적이고 교훈 적이기도 했다. 잠이 오는데 책을 읽고 싶을 때 부담없이 꺼내 읽기좋아서 소설도 아닌 그 책을 수십번씩 읽었다.
글의 순서를 외울 정도였으니.
난 온세상이 깔깔깔이 되고 싶은 사람이지 지금 당장 그런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 모습은 온세상이 깔깔깔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미쳐 되지 못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애매한 상태를 잘 번역 하는 일이 어디 쉽겠느냐 말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완성본이 아닌 이렇게 애매한 상태에 있다.
사람은 책과는 달라서 내용이 변한다.
정확히라면 '온세상이 깔깔깔은 아닌 사람'이 정답일테지만 그것은 현재에 대한 번역일 뿐이다.
번역을 당하는 입장에서라면 누군가 나의 미래까지도 번역을 해 주면 좋겠다.
'온세상이 깔깔깔'에 초특급 공포소설 '어느날 갑자기' 한 장이 끼워져 있다. 그 한장을 빼라고 조언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눈코입 팔다리가 전부가 아니고 심지어는 입을 통해 나오는 말로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은 힘이 든다.
마음은 들리지도 냄새나지도 쉽게 보이지 않으니.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사람들은 '무엇'이 되고 싶은 책의 제목이 있다.
저마다의 그 '무엇'을 잘 찾아내면 나는 훌륭한 번역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