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언제나 그랬다. 안녕을 고하려는 순간에야 깨달은 사실은 나란 인간은 결국 일주일이라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구나 라는 절망이었다. 단지 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는 데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대개 일주일이라는 고비를 넘기고 나면, 마음을 놓게되고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못된 습관이 번져나오곤 했다. 이별을 고하는 안녕은 언제나 어려웠지만, 동시에 순간일 뿐이었다. 순간을 지나고 나면, 어쩔수 없이 그리고 자연스레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로-어쩌면 나를 보기 위해-찾아온 그녀 앞에서 나는 또다시 카운터 아래로 숨을 뻔 했다. 그러나 3초도 지나지 않아 이내, 온갖 비난의 말을 쏟아낼 그녀를 대할 자신이 없었지만, 역시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비난은, 조소는 커녕 그녀는 거짓없는 미소로 내게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니, 그순간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옴과 동시에 입에서는 이미 자연스레 미안해요, 미안해요 두마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용서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용서받지 못할 바엔 나 역시 그들을 미워하는 게 편하겠지, 스스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거짓없는 미소에, 눈빛에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용서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모든 감정들이 맥없이 흘러내리고, 말없는 눈빛 위에 共感만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아마 두고두고 이 여름날의 부끄러움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 한 구절이 내내 떠올랐다. 오늘은 먹구름 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는 내내 덥다며 유난히 호들갑을 떨었고, 보이지 않는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몸이 뜨거워, 뜨거워 그렇게 스스로 21살 여름의,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그의 옆모습을 보았다. 나만큼이나 붉게 상기된 볼, 하필이면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하필이면 짖꿎은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그 순간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좇으려다 문득, 가슴이 또 한번 쿵했다. 가게 앞에 서있는 뒷모습, 한편으론 듬직했고 또 한편으론 쓸쓸해보이는 그 뒷모습은 그렇게 아주 잠깐, 가게 앞에 멈추어있다 마침내 그곳을 떠났다. 돌아서는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가게 문앞을 두리번거리는데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가 서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말처럼, 순간 눈이 마주쳤던가, 예상치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는 그순간 터질듯한 가슴을 안고, 홱 돌아서 가게안으로 돌아왔다. 오후 내내,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람인데, 정작 마주한 순간에 그 어떤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진한 가슴 떨림은 난생 처음이라, 가슴이 먹먹하고, 사고에 옅은 안개가 끼인 느낌에, 배에서부터 내려온 따뜻한 열기가 다리로, 허벅지로 전해내려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가슴이 먼저 반응했던 느낌은 정말, 정말로 처음이라 이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가슴에다 대고, 진정해 제발! 소리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입에서는 이미 거둘 수 없는 함박웃음이, 두눈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사라져가는 그의 희미한 잔영을 열심히 쫓고 있었다.
"내가 사랑에 대해 얘기한 거 기억나요? 그건 사실이 아니였어요. 나도 사랑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요. 본적도 많아요 수세기동안 봐 왔는걸요. 그 광경을 볼 때 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참는 것 밖에 없었어요. 언제나 최악이였죠. 고통에 거짓말 증오까지. 그런 것들이 싫어서 다시는 보지 않았더랬죠. 인간들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당신이 전 우주를 샅샅이 뒤진다해도 사랑만큼 아름다운건 아마 찾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에 조건이란게 있을 수 없고 또한 사랑은 예측할 수도 없으며 전혀 예상할 수도 없고 또 제어할 수 없으며 참을 수 없는 거라는 걸 알아요.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기가 이상하리만치 쉽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 아무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내 가슴이 뭐랄까 그러니까... 내 심장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처럼 느껴진다구요. 내 심장이 필요하다면 그냥 줄께요. 선물도 물건도 협상도 아니예요. 그냥 내 사랑을 받아주기만 해줘요. 당신의 마음 말이예요. 내 마음과 바꿀 수 있는,"
스타더스트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오래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려하고 있음을 예감했다. 이틀후면, 가게 일도 끝나는데, 와줄 거예요, 당신은,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한번만 더, 기회를 줄까요, 당신은
무조건, 사랑하라.
비록 그대가 심판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레드카드를 받고
축 늘어진 어깨로 그라운드에서
퇴장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사랑하라.
무조건 사랑하라.
사랑이 그대의 인생을 눈부시게 하리라.
-이외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