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앞머리는 아주 중요하다.
어떤 앞머리를 하고 있는가는 내가 세상을 향해 얼마나 당당한가의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영구 같은 머리를 하고는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앞머리를 잘랐다. 미용사는 딱 봐도 원장선생님 밑에서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미용학도였다. 문 닫기 2시간 전, 막바지 머리손질에 다들 바쁜데 놀고 있는 사람은 그 수련생뿐이기에 내 머리는 어쩐지 그 떨리는 가위에 맡겨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원장님을 고집할 까탈스러움을 부릴 자신이 없었기에 뭐, 실패하면 다시 다듬겠다는 일념으로 "그냥 너무 짧지 않게요" 한마디 남기고 의자에 앉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도무지 돈들인 앞머리가 아니다. 고등학생 때 내가 세면대에 종이 깔고 자른 그 솜씨랑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잘라야 했다.
오늘 그래서 오전 일찍 갔더니 이상하게 오전에도 그 언니만 한가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저녁에는 경력있어 보이는 사람이 나를 맞았다. 그런데 믿었던 그 사람은 연습생이 엎친 내 앞머리를 덮쳤다. 와우, 나는 완벽한 영구가 됐다. 참 오랜만에 실핀으로 앞머리를 홀랑 까고 앉아있다.
다운받아 놓은 홍상수 감독의 여관영화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쪼록 그 여인들이 내 앞머리를 발판삼아 멋진 헤어아티스트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