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보다 30분 넘도록 도착하지 못하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늦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예기치 못한 여유가 나는 즐겁다.
약속시간에 늦는 날은 평소보다 신호도 더 잘 걸리는 것 같고, 평소에는 아찔하게 잘도 달리던 버스는
유난히 태평하게 굴러간다.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길은 변수가 많아 초보 경기도민 시절에 자주 약속에 늦어본 경험이 있어 늦을 때의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늦는 누군가가 밉지 않다.
게다가 혼자 노니는 걸 좋아라 하는 사람에게 1시간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횡재를 만난 기분일 때도 있다.
그렇게 친구를 기다리다가 문득, 몇 일 전 북카페에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에도 내가 참 이상했다. 평소 같지 않게 늦는다고 화가 다 나는 거였다.
그때 기다리던 사람과 지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근데 내가 한 사람에게는 기대를 품었던 모양이다.
나를 만나러 한달음에 달려와 주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한 것은 나의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쯤 내 맘을 못살게 굴었던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여파가 컷던 것은, 그 만큼 내가 그사람에게 품은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나 보다.
객관적으로 봐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웠던 것이다.
이유없이 조건없이, 그렇게 사랑할 수는 없다.
아가페 사랑으로 손꼽히는 모성애조차도 절대 무조건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엄마니까, 나에게 그것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 받기를 원하는 순간부터 내 맘은 불편해졌다.
주는 것의 편리함을 새삼 깨닫는다.
아낌없이 주는 것은 어쩌면 참 이기적인 사랑이다.
주는 것의 속편함을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나 편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