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단순한 애정의 대상이 아닌 '엄마'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애정이라 함은, 내가 얻었던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예외로 만들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감정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나는 정말 인간에게 줄곧 억눌렀던 기대를 그 사람을 만나 폭발시켰다.
그리고 알았다.
그동안 내가 들어온 털털하다, 단순하다, 쿨하다는 평가는 모두 기대하지 않음 덕분이었다는 것을.
기대를 하는 순간 인간은 절대 쿨해질 수 없다.
사랑을 소생하는 일은 기대를 품는 것과 동시에 시작됐다.
내 멋대로 기대를 품어서 나는 그동안 괜한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쓸데없는 상처를 내왔다.
나를 가능한 빨리 다 보여주고,
자 그래도 너 나를 사랑할 수 있는게 확실하니? 하고 묻는 것이
그동안 내가 해온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아직 확실하지 않은 그들에게서 한번도 확실하다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확실함'은 시간과 추억이 더 보태져야 우러나오는 것을 모를리 없는데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단 시간에 나에게 확신을 가져 줄 것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약간 기적에 가까운 운명을 믿은 것도 같다.
사랑은 사랑대로, 기대는 기대대로 분리할 수 있다면 쿨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쿨하다는 것이 단지 차갑다, 진지하지 않다. 깊지 않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사랑만 할 수 있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이기적인 연애와 맹목적인 사랑 가운데, 나는 맹목적인 사랑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 맹목적인 사랑은 순애보를 염두하고 한 말이 아니다.
주든 말든, 난 니가 되졸려 줄거란 기대를 안할거다. 너도 인간이니까. 인간에게 거는 기대는 반드시 무너진다. 무너짐은 상처를 만든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기대를 않겠다. 나는 그냥 주고 싶은 만큼 주는 내 사랑만 하겠다. 거기서 즐거움만 취하련다. 하는 의미였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아주 치밀한 방어막이다.
자신있었다. 그게 가능할 줄 알았다. 그때는.
가벼워 보이려 했지만 내 시작은 엄청 두렵고 어려웠음을 니가 알까.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엄마 찾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문득 냉정을 되찾았다.
너 지금 뭐하고 있니.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남에게 나를 쏟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렇게 상처많고 고민많은 나 좀 받아줘 하면서 이 지긋지긋한 나를 비우고 싶었다.
남들만큼 상처받고, 꼭 그 만큼만 고민하면서도 마치 나만 유별난 듯한 착각에 빠져 눈빛을 슬프게 반짝거렸다.
깨닫는 순간 나의 상황극에 그만 비실비실 웃음이 번졌다.
그 누구도 짐을 떠안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엄마라면 모를까.
심지어 엄마도 싫다고 돌아서는 일도 있는데 만나지 얼마 안된 타인이 무슨 부처라도 된다고 그걸 기대했을까.
나는 그 짐을 누군가에 지우려했다.
그리고 받아주지 않는다며 또 괜한 상처를 만들 뻔했다.
한참을 더 공유한 후에는 말하지 않아도 어느순간 짐을 나눠들고 바꿔 들겠지.
그러고나서 나는 나를 돌아봤다.
나는 씩씩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슬픈 상황극에서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