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부터 감기 기운이 있다며 축 늘어져계시던 아빠가 어젯밤에는 거실에서 잠이 드셨다.
쇼파 반경 1m이내에 알큰한 소주냄새가 훌훌 풍긴다.
흔들흔들, 깨워보아도 못들으셨는지, 못들은 척 하시는지 꼼짝을 안하신다.
오늘하루는 내 맘도 우중충 그늘이 진 채로 시작을 했다.
이기적인 사람이다보니 그런 내 우울이 아빠의 컨디션보다 우선이었다.
아빠역시 이기적인 사람이다보니, 내 우울보다는 아빠의 컨디션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감정을 우선시하며 대화를 한다.
서로의 감정이 우울일 때 그 대화에서는 섭섭함이 생겨난다.
한쪽이라도, 그럭저럭 괜찮음이었다면 위로가 생겨났겠지.
우울은 작은 위로 하나로 싹 나아버리기도 하는데 말이다.
알면서도 나는 작은 위로한마디가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다 이기적이라며 내 이기심을 보고도 "원래 인간은 그렇지"하고 체념하며 사는 인생은
나에게 위로가 될까?
나빠질 가능성을 생각하며 충격에 대비하는 것과
혹시 좋아질 가능성을 생각하며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충격은 번개처럼 스치고,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일은 일상이다.
번개를 맞으면 죽거나 죽을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나 살면서 우리가 번개를 맞는 확률이 얼마나 되던가.
그것 때문에 일상의 행복을 포기하는 일은 현명한 것일까?
사람이 이기적이고 그것 때문에 때로 악해지는 소소한 일들에서도 우리는 번개같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상처는 번개를 맞아 생긴 상처가 아니다.
말그대로 번개 "같은" 상처이다.
별 것 아닌 정전기에서도 번개의 가능성을 찾아냈다며 호들갑스러워 하는 것이다.
엄살쟁이.
주사바늘만 봐도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러대는 어린 아이를 보면 안쓰럽다.
괜찮아, 막상 맞으면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
나는 한숨을 쉬며 어린 아이 한명을 떠올렸다.
나의 이기심과 아빠의 이기심은 부딪혔지만, "사람은 다 이기적이다" 하며 돌아서는 대신 전기장판을 끌고나와 거실에 펼쳤다.
아빠, 굴러와! 굴러떨어지기만 해 귀찮으면.
전기장판 위로 아빠가 굴러떨어졌다.
나의 미안함과 아빠의 고마움이 부딪힌다.
그런거라고. 그렇게 살면된다고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