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백일을 사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 평생 살면서 겪어야 할 일보다 고달프지는 않다.
그러나 그 안에 죽어버릴 확률이 많았던 옛날 옛적에는 100일을 살면 그제서야 이 아이는 살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 전까지의 아기는 면역이 약해 탄생의 기쁨만을 안겨준 채 없던 사람이 되기 쉽다.
태어난 모든 것들의 100일은 그렇다.
그런데 또 어디 그렇던가.
돌이 되어 천사가 된 생명은 얼마나 많으며, 각종 사고와 질병에 다섯살배기라고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생일을 그렇게 축하 하는가보다.
생일 축하의 의미는 "안 죽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리는 것이다.
위태로움을 견디며 한해씩 보내고 나면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러면 위험을 더 잘 감지하거나 피할 수 있게되지만, 죽는 순간까지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할 수는 없다. 오히려 늙어 내리막을 가는 사람은 어린아이 못지 않게 위태롭다.
확실히 나이가 들 수록 위험으로 부터 점점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한해한해 갈 수록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행동과 몸짓, 또는 기쁘거나 끔찍한 일들이 짐짝처럼 점점 커질 뿐이다.
그렇지만 남은 사람에게 저 짐짝이 더 커지지 못하도록 하겠느냐고 물으면 그러자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짐을 평생 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 못가 덜어내고, 좀 더 가서는 내려놓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야 할 필요는 없다. 그 짐이 무거울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