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짐으로 사람들이 제각기 휘청인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함부로 누군가에게 기대려고도,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끔은 기대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나는 적당히가 잘 되지 않아서 '가끔씩'이라는 단위도 잘 적용이 안된다.
근데 어떤 날은, 아니 사실 매번 휘청일 때마다 눈치없이 다른 사람 어깨위로
사정없이 쏟아져버리고 싶을때가 있다.
그걸 받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러나 너무 잘 알아서,
또 나는 적당히가 되질 않아서 혼자 버틸 뿐이다.
또 누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다독이다가도 그가 나에게로 쏟아지려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안색을 바꾸기도한다.
이리 사는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 전에는 기댄 어깨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일을 겪으며 두번 무너지는 일을 겪거나,
누군가의 짐에 눌려 쓸데없이 함께 쓰러지는 일들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인간이 서로 시옷자가 되어 사는 일은 나에게만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나 유용한 적당히가 되질 않는 것일까.
오랜만에 손끝에서 발끝까지 무기력이 퍼져간다.
아, 한번 시작되면 끝내기 어려운 일들은 애초에 시작을 말아야 한다.
도박이 그렇고, 우울이 그렇다.
잘 해왔지 않았느냐고 잘하던 혼잣말도 나오지가 않는다.
또 그 흔들림을 반복하는 것은 그동안 엎어지고 넘어진 길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넘어질 일이야 앞으로도 수두룩 하겠지만 같은 돌부리에 두번 걸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대개는 늘 같은 곳에서 상처를 입고, 넘지못하는 취약부분에서 헤멘다.
빠져나 올 수 없는 미로는 그냥 건너뛰는 것도 방법일 수가 있지...
그런 걸 도피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은 이 미로에 호기심이 남은 모양이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하던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일에 몰두하기. 매진하기.
당분간은 세상사람들 더미 위로 나를 내던져서 그 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기.
제작년 나를 끌어올려준 그 사람이 생각났다.
내 웃는 표정에도 속지 않았던 얄미운 사람에게 나는 나를 쏟으려고 했다.
그 만의 짐으로도 힘들었을 그사람은 결국 나를 받아주지 못했다.
아쉬움은 평소에는 잠들어있어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하더니,
그때와 꼭 같은 문제더미에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그리움은 또 나의 우울을 부추긴다.
이대로 나는 맴맴 돌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도망갈 곳이 있다면 나는 뒤도 안돌아보겠지만 내가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다행히도 나는 너무 잘 알아서, 그런 생각은 애초에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답대로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나.
수학문제와는 확실히 다른 세상살이.
다른 것은 몰라도 확실한 하나는, 곧 지나간다는 사실.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