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이 달아오르는 것은 냄비에 물을 끓이는 것과 조금 비슷한 것 같다.
냄비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물이 끓은 것을 알 수 있다.
끓어오르면 김이 오르고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것 처럼,
사람의 마음도 온도계를 담그지 않아도 자연히 끓는점에 오르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을 알면서도 나는 요즘
처음부터 끓는 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자꾸만 '이쯤이면 끓고있나?'하고 생각한다.
김은 나고 있나? 얼마나 끓어가고 있나? 계속 초조해 하다가 오늘은, 내가 가스불은 켰던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처음 가스렌지에 불을 켜던 날, 손잡이를 돌리기 직전의 그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막연한 두려움을 기억한다.
렌지에 파란 불이 나타났다고 반드시 불이 켜지지는 않는다. 몇초간 따닥따닥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을 모르고 처음에는 자꾸 불을 꺼트렸다.
우여곡절 끝에 가스불을 켜고 느낀 뿌듯함, 나는 이제 렌지 근처에 오면 안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 이만큼 컸다는 기쁨.
확실한 것은 가스불은 켜져있다.
나는 지금, 가스렌지 사용법을 막 익힌 그 때의 기분이다.
조심스럽고 약간 두렵운 기분으로 이제야 약간 안도감과 성장을 느낀다.
가스렌지를 사용하는 것은 내 생활을 유용하게 만들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지 유용 그 자체는 아니다.
이제 이 위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요리를 배울 때처럼, 차근차근 하나씩. 손쉬운 것 부터 내가 먹고 싶은 것,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익혀갈 생각이다.
이제 곧 나는 라면도 밥도 하고 국도 끓에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렇지 않아지고 어떤 날은 귀찮아지기도 하겠지.
그러나 그것이 줄 만족감이 더 크고 자주있을 것을 안다.
불행히도 영원한 기쁨이나 행복, 만족과 안도감은 없지만
다행히도 영원한 무료함, 미숙함, 귀찮음, 허무함, 막막함, 절망도 없다.
살아볼만 한 것은 모든 불유쾌한 감정들은 어느순간에 반드시 끝이나고 시행착오 끝에는 능숙함이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게다가 어느쯤엔 기쁨도 와준다는데.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불행과 다행, 귀찮음을 감수한 맛있음, 미숙함을 지난 능숙함, 절망의 유한함, 허무한 중에 예기치 않은 행운, 무료함을 달래줄 책,,, 그냥 살아볼만 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