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갈등이 있었죠?
그 시작은 너무 소소한 일이라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어요.
어떤 말들을 주고 받았어요?
나는 진심으로 말을 좀 해보고도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게 없다.
워낙에 요즘 이러는 것이 일상이라 새삼스럽진 않은데 사실 좀 놀랐다.
그 말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것이.
지금은 기억도 못 할 일들로 그때는 죽을만큼 힘들었다는 것이.
이제는 그냥, 그때 죽을만큼 힘이 들었지, 하는 사실만 건조하게 떠올리고 있다.
그때 그 격동 속에 있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시켰다.
주고받았던 모든 말은 무의식 속에 가둬버렸다.
마음 안에 봉인된 괴물이 언제 튀어오를까,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그저 내가 성숙한 줄로만 알고 스스로 기특해 어쩔 줄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어쩜 그리도 한순간에 내가 변해버린건지.
그냥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문득 가둬버린 괴물을 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나이에 즐겨보는 '나루토'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늘 밝고 명랑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루토는 봉인된 괴물의 지배를 받는 순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동료,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입힌다.
어마어마한 힘을 빌려주어 나루토를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는 그 괴물은 나루토가 그 힘을 자주 쓸수록 점점 주인공을 강하게 지배한다.
그 괴물을 통제하는 것이 나루토 일생일대의 과제이다.
나는 평소와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짓는 일이 잦아졌다.
또 작은 마음의 흔들림에도 나는 온통 흔들려버린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차가운 표정, 신경질적인 말투를 꺼내버린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 앞에서도 이런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아니다, 절대 그렇게 못한다.
나의 '이상징후'를 왜 그 동안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을까?
확실히 나는 좀 이상하다.
밝게 살아가게 되었나 내가? 그것은 나 스스로 나의 일부분만을 보려는 생각이다.
망각이 있어서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너무한 망각은 나를 제대로 살지 못하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