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시간이 흐르는 것이 오늘은 약간 아프다.
지나오는 동안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도 겪은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변하지 못한다.
결국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거라는 그 말이 틀렸다고 하고 싶어서
나는 부단히도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제 수긍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 그 본질을 '나'로 받아들여야 겠다.
대신 본질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면,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자라는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하다.
그래서 나쁜 성품은 무조건 양육자의 탓으로 모두 넘겨버린다.
나도 그랬다. 나의 검은 부분은 다 우리 엄마한테 물려받았고 다른 엄마들처럼
너그럽게 키우지 못해 난 항상 성마른거라고 원망했었다.
그런데 아기들도 태어나면서 부터 가진 성격머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양육자도 아기한테 영향을 미치지만 아기도 양육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유전과 환경은 언제 어디서든 상호작용하는 사이라서 나의 환경인 엄마와 내 성질머리는
이날 이때 껏 상호작용해 온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의 '나'인 것이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완전히 보송보송 건조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습기차고 눅눅한 환경이
모두 한사람의 탓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그 속에는 나의 성질머리도 반, 딱 반만큼 작용했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똑같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의 환경을 대하는 법...
이해, 사랑, 포기, 무관심.
어떤 방법은 근본적인 답이 아니거나, 어떤 것은 도저히 내가 할 수 없어서 나는 나의 환경을 대하는 법을 종잡을 수 없겠는 심정이었다.
사랑이나 이해같은 좋은 단어들이 결국 정답일 것 같은데, 그렇게 가기까지의 중간 방법을 하나 구상해야겠다.
그것은 나의 자존심과 욕심을 버리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기도라는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다.
욕심을 하나도 남김없이 부수어주세요. 허영도 모두 없어질 수 있게 해 주세요.
내 기질은 아마 내가 평생을 짊어지고 갈 숙제이다.
이제 그 기질을 버리려는 노력은 안한다.
그래서 불만인 것은 여전히 불만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서 또 화가날 것이다.
다만 내가 성급하고 감정이 앞서려는 순간을 맞이할 때를 기다렸다가 조금만 참자고 타일러 볼 생각이다.
불만을 언제 토로하느냐, 화를 얼만큼 세게 내느냐에 따라서도 환경은 꽤나 많이, 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싸움이 학습된 무기력을 낳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보름 의 희망이 쉽게 무기력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다시한번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방향을 잃지말고 초심을 유지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 욕심버리라고, 자존심 더 꺾으라고.
인간은 나약하지만 생명력이 참 강하다. 끈질기다.
어떻게든 살아야 겠기에 나는 도무지 우울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을 뿐이다.
이제 앞으로 한 달 반, 잘 버티자,
한달 반 후, 실패해도 절망은 하지 말자,
열심히 노력해야만 실패해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까.
노력할 일만 생각하자.
일단 그것이 내 첫 계단인 것은 확실하다.
한 발자국 올라서는 것이지. 내가 서 있는 곳은 낭떠러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