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안부. 살아있다는 전언. 옛일들이 잠시 떠올랐다.
외롭다고 중얼대는 내 목소리가 누군가의 귀에는 반드시 들리나보다.
보고싶다. 우리 만나자. 한다
아마 그 사람도 외롭다 중얼대고 있었던 거다.
외로움을 손수 헤쳐나온 한 사람에 의해 두사람이 건져 올려졌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 한다는 것을 안지 얼마 안된다.
나만 유별나고 그래서 외로움은 부끄러운 것인 줄 알았다.
학교를 떠나오고 해가 더 갈 수록 우리는 더 많이 더 자주 외롭다.
새롭게 만나는 세상이 듣던대로 만만치 않다.
세상 다 아는 줄 알고 머리는 클대로 커서 더 커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매일같이 깨지면서 세상사는데 큰 머리는 필요없다는 것을 배운다.
새롭게 무엇을 배우기보다는 알고있던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어쩌면, 교과서같은 답을 가지고 있었던 머리와 가슴이 현실과 타협하는 중이다.
누구는 융통성이라고도 하고 사회생활에서 통용되는 법이라고도 한다.
사회생활 법전이라도 있었으면 미리 공부라도 했을텐데.
타협하고 돌아서서는, 어쩐지 쓸쓸하고 내가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위로받고 싶고, 주위에 위로해 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인생들은 전화기를 붙든다.
사회생활 법을 다 배우면 내 안의 원칙사이에 벽들이 얼마나 낮아질까.
그럼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 우선, 지금보다 훨씬 덜 혼란스러울 것 같다.
변화의 순간은 늘 힘겹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지금보다 만배는 고지식했던 고등학생이 자유로운 대학물을 먹느라
마음속은 매일 전쟁이었다.
졸업을 하면서 나는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찌들고 찌든 어른이 된 줄 알았다.
아, 세상에. 더 찌들 것이 남았을 줄이야.
그러나 변화의 고비를 넘고 나면 엄청난 안식이 찾아온다.
나는 그것을 믿을 뿐이다. 다시 편해질 것이다.
그것이 지나면 또 변화가, 변화를 넘으면 말할 수 없는 평화가.
계속 이렇게 변화와 평화가 반복 될 것이다.
지금도 첫번 째 변화를 맞이한 순간처럼 지치고 괴롭지만
속이 답답해 그것을 못견뎌 몸부림하던 예전과 지금의 나는 좀 다르다.
아픈대로, 좀 내버려 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변화에 익숙해 지듯, 변화를 맞이하는 일도 익숙해 지는가 보다.
다 지나가리라는 뻔한 말, 뻔해서 진리인 말을 중얼중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