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 세상에서 말이라는것, 언어라는 것이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이라 말하면, 나는 이내 '무엇'이라는 단어로
단정되고 옭아 매어지는데, 이것은 괴로운 일이다.
게다가 내가 말한 '무엇'이라는 단어가 타인에게도
나와 같은 '무엇'으로 받아들여 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내가 사랑한다라고 말했을때, 이것의 간절함 같은건
결국 전달 되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말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말하지 말걸.'
내가 가진 모든 단어에 대한 공감을 얻어낸 후에야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거친후)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 될텐데 이것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언어가 생기기전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일,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긴 시간을 들여
타인에게 알렸을 텐데..
가령, 상처가 난 사람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상처를 낸 것과, 상처가 난 부위와, 어디서 다쳤으며 등등을
알리고 싶은 타인과 함께 동행하고 상처를 보여주고하며
길게 그리고 자세히 공감했을 것인데.
이 '말, 언어' 라는 것이 생기고 문명이 발달하고 부터는
그 길던 과정들이 압축되고 말았다.
많은 학자들은 인류는 진보하였고 우리는 효율적으로 변했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을까..
문제는 이 압축되어 있는 기호들이 다시 타인에게 넘어가서
그 해체 되는데 있어, 필연적으로 수많은 왜곡을 거치게 되고
현실감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수십, 수백명의 사망 소식 앞에서도 마우스 휠
두어번 굴리우는 것으로 스쳐지나 가는 희대의 냉혈한이 된다.
만약 내가 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적어도 눈으로라도 목격 했더라면 차마 그러지는 못할텐데.
(같은 사건이 전혀 같아 지지 않을텐데. 실제로 나는 집에서 키우던 선인장이 죽은 것을 더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큰 사건이건 작은 사건이건 관계 없이, 이런 간소함의 몇단계만
지나치면, 그 뒤에 남는것은 왜곡과 허무함 뿐이고
나는 공감하지 못한 만큼, 좁은 테두리 안에서 겨우 말몇마디로
인생을 세상을 정의하고 만다.
이런 것들은 나를 회의적으로 허무하게만 할뿐인데도
끝없이 말 걸어오는 '말' '말' '말' 들에게 나는 습관적, 반복적
반응만 보인다.
아..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중에
유럽 어느 지방에서는 무지개를 5가지 색으로 부른다고 했다.
한국 처럼 7가지의 색을 아직 이름 짓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무지개가 5가지 색이라니, 7가지 색이라니.
그건 마치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라고 정의하고
나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만 부르는 폭력...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생생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생기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