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도 돌아보면서 살어라. 나는 너무 앞만 보고 온게 지금 후회가 돼. 즐기면서 살아.
-응 그럴게. 아빠.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나는 똑같이 울고 있는데 마음상태는 정반대이다.
이대로는 끝없이 같은 문제만 맴돌다 다 끝나버릴 것 같아 아침에 나는 죽을 맛이었다.
매일 걷는 길은 오늘도 사람이 나뿐이라 속편히 목놓아 울기 좋았다.
한바탕 울어제끼고 어찌어찌 하루를 살고 집에 돌아왔는데 뜻밖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40년을 소처럼 일해온 아빠에게는 어쩌면 좀 슬펐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나도 마음이 뭉클뭉클했다.
저녁에 우리가족은 모처럼 한마음이 되어 울었다.
엄마와 나는 그 동안 수고한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 아빠는 그동안 수고한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울긴 울었는데 뭔가 마음이 놓이는 눈물이었다. 슬프지는 않은.
그동안 그렇게 농부의 아들, 빈농의 아들 그러면서 10년전부터 귀농의 꿈을 내비치셨는데
오늘은 술을 드시고 진지하게 그 말씀을 꺼내셨다.
아! 그거다.
그거면 아빠를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
아빠가 행복하면 우리가 다같이 행복하겠다.
희망이 느껴지는 절망이었다.
아빠가 평생을 들여 짜낸 인생의 교훈은 즐기며 살아라. 뒤도 봐라. 주변사람도 봐라. 일만하지 말아라.
아빠의 말을 나는 오늘 뼛속 깊이 새겼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같은 무게의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오늘 아빠의 말은 살면서 두고두고 내가 가져갈 재산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운 저녁이다.
아침에는 바람이 서늘하더니 저녁에는 바람이 선선하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문제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내버려두는 것 말고 방법이 없는 문제는 저혼자 길을 찾아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이제 문제를 좀 놓는 법도 알아야 겠다.
어차피 잘 끝날 문제, 내가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면 기도하며 기다리는게 최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