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새로 쓰고 싶은 욕구로 미쳐버릴 것 같을 때가 있다.
미쳐버릴 것 같은 이유는 아마, 그 동안 공들여 써 왔던 노력과 분량이 아깝고 버리면 헛수고가 될 것 같은 공포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새롭게 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동안 써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갈아엎는 대신 수정을 하고 앞으로 써 갈 것들을 더 잘 쓰기 위해 매진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앞 문단이 탐탁지 않으면 글 전체가 뒤틀린 것 같아 찜찜하다. 좋은 시작은 좋은 끝으로 이끌어간다고 믿어서 나는 자꾸 앞문장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멋지게 원고지를 찢어내고 싶은 욕구로 지난 일주일 내내 힘이 들었다.
나는 한번도 장문의 글을 써 본적이 없다.
장문의 글은 좀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구상이 필요한 것 같다.
전체 그림과 캐릭터정도는 명확해야 한다.
어떤 기승전결을 가지고 싶은지, 등장인물의 성격은 어떤지가 명확하면 줄거리가 완전히 완성되지 않아도 글이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써 본 사람들 말로는 오히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더 떠오르기도 한다고 그런다.
요즘은 사전제작 드라마가 인기라고 하는데, 장단점이 있다.
안정적으로 흘러가지만 변화나 새로운 욕구에 대응하지 못할 수 있고, 대신 엉뚱하게 삼천포에 빠지거나 시간에 쫒기듯 이야기제작 기계처럼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장문의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던가.
나라는 등장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나? 그 가족들은? 친구나 동료에 대해서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던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원고지를 다 뜯어내고 다시 쓰는 것보다,
이제부터라도 주인공과 친구들, 가족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일지 모르겠다.
또 주인공이 하려는 일에 대한 밑그림, 그로 인해 닥칠 수 있는 갈등에 대해 미리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 두어야 겠다.
이야기는 이미 시작을 했고 시간을 타고 계속 흘러가고 있다.
나는 그저 시간을 앞두고 있다. 그것이 나의 원고지다.
나는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