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싸우며 살고 싶다
는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자신들의 사랑이 특별하고
싸우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이 전 세계에서 제일 불행하고 처량하고 속상하니까.
사랑하고 싸우는 동안 평범하다고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다. 아마.
그래, 보면 참 사람 사는 일에 상대적이라는 말은 쓸만한 장소가 없다.
그래서 '비교적' 비참해질 것도, 또 우월감에 젖을 필요도 없다.
내용은 달라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감정들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게 모여 아마, '평범'이 되는 것 같다.
너는 부모님 두 분이 다 살아계시니까 어릴 때 아빠를 잃는 내 맘을 몰라.
그래.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친구 역시 부모님과 나, 우리 세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못한다.
가진 것이 하나 더 있으므로 비극이 한 가지 정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래도 살아계셔서 다행이지'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주문을 외울 수 있을 뿐이다.
살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는 누구나 막막하고, 화나고, 슬프지만. 그래서 이해하지만.
자기가 가진 비참함이 내 것보다 더 크니까 너는 내 앞에서 속상하다고 말하지 말고 나를 위로해주지 않느냐고는 딱 한번만 따졌으면 좋겠다. 그 이상은 참기 힘들 것 같다.
나도 참. 한해 씩 갈수록 분하고 억울한 게 늘어가는 것을 보니 갈수록 속이 좁아지는 것 같다.
어떻게하면 나를 지킬까. 어떻게하면 더 상처받지 않을까를 고민하다보니 '상처'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작은 일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예수님이 오른뺨을 때린 사람에게 왜 왼뺨도 내밀라고 하셨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까지는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다.
상처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