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 감기로 고생을 했다.
다행히도 머리는 아프지 않아서, 수능공부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폐렴환자마냥 미친듯이 쿨럭거리고 있다보면
가슴 한 가운데에서 지긋이 밀려오는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책상 한 켠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에는
코 푼 휴지들이 어느덧 꽉 들어차버렸다.
참 집안에만 있다보니까 그렇지, 만일 이런 상황에서 밖으로 싸돌아다녔다가는
신종플루 확진 환자로 오해받기 알맞았을 것이다.
아마도 저번주 화요일이었을 것이다.
대략 일주일에 한 두번쯤은 아침에 친구들 두명이 모여서
셋이서 캐치볼을 하고는 한다.
그날도 나의 "강력하고 정확한" (=_=;;) 어께를 선보이며
야구를 시작한지가 얼마 안되는 두 친구들의 실력향상을 도와주고 있었다.
캐치볼이 끝나고,
대학을 다니는 친구는 학교로 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할 일 없는 (=_=;;) 삼수생들은 벤치에 앉아
눈부시게 파란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만 그런가....)
아침 햇살은 가늘게 운동장에 떨어지고 있었고
서늘한 바람이 흐르는 땀방울을 조금씩 냉각시키고 있었다.
문득, 삼수를 하는 (그리고 조금 걱정되는...) 내 친구가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같이하자고 했다.
마침 무료한 나날에 찌들어가고 있던 나는 OK 사인을 냈다.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뭐 이렇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그래서 집에 들러서 공부할 거리를 챙긴 다음,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 친구는 다소간 생각이 많은 녀석이다. 중요한 것은 이 생각들이
약간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_=;; (이 점이 나랑 상통하는 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디에서든지 이 친구랑 대화를 하고 있으면
결론이 날 수 없는 상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끝도없이 펼쳐지고는 한다.
아마 내가 대화에서 남들에게 "지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냥, "어,그래." 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이제 내려야 할 때다. 어익후, 이러다 못 내리고
다음정류장까지 지나가버리겠구나. 하다가 급하게 내렸다.
그런데 내 친구녀석이 문득 호주머니를 만져보더만,
"헐, 지갑, 지갑 놓고 내맀다 =_=;; 우짜지?"
이 화상을 떨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 길가를 보니 그 버스가 신호에 걸려있었다.
나와 친구는 잽싸게 뛰어가서 버스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야가 버스에 지갑을 놓고 내맀거든예, 문좀 열어주이소~"
목소리 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_=;; 내가 문을 두드리며 외치자
나의 험악한 외모에 겁을 먹어서인지 문이 열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지갑은 내 친구가 앉았던 자리 밑에 끼워져있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
"에라이, 이 주변머리 없는 노마, 그걸 또 흘리고 댕기나 ㅋㅋ"
(나는 부산 토박이들도 욕할 만큼 사투리가 심하고 실제로 표준말을 구사하지 못한다 =_=;;)
이런 대화를 나누며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도서관은 예나 지나 그렇듯 조용하다.
또한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사람들이 도서관에 박혀서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도 그 행렬에 끼여서
한 두어시간? (=_+) 공부를 했다. (원래 나는 공부를 한번에 2시간 이상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슬슬 배가 고파진다.
"야, 밥묵으러가자." / "어디가 좋겠노?"
"저기 우체국 가면 밑에 구내식당있그든, 그기가 싸고 좋다." / "오,진짜? 그라믄 함 가보자."
내 친구의 말대로 설렁설렁 구내식당까지 간다.
한산한 구내식당에서 밥을 시켜 먹었다.
흠... 싸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좋은지는 모르겠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작은 내 친구는 그 정도를 먹어도 배부르겠지만
나는 남들보다 한 두어배는 먹어야 배가 불러지는 (그에 비해선 그렇게 뚱뚱하진 않은듯) 사람인데
이건 뭐... 너무 밥이 알량하다.
하지만 투덜투덜거리면서도 마늘장아찌와 가지 같은 맛없는 것들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다시 도서관에 갔지만 왠지 공부를 더 하긴 싫어진다.
그래서 열람실로 가서 책을 집어들었다.
자동차 매니아인 내 친구는 자동차 관련 잡지를 집어들었고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을 집어들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지리쪽이 내 예비전공이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반이다.
"슬슬 집에 가불까?" / "그럴까?"
"야, 오늘은 느그집에 좀 가도 되긋나?" / "왜?"
"걍, 심심해서 그란다. 와? ㅋ" / "알겠다 ㅋ"
이리하여 친구네집으로 갔다.
어머님께서는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어머님께서 차려주신 사과는 너무 시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한 두어시간 정도 PC를 하다가...
나는 슬며시 지겨운 맘이 들었다.
"야, 이제 집에 가볼란다" / "응"
"내일도 나온니~" / "알겠다. 잘가리~"
....
하지만 나는 "내일"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닷새정도 앓았지만, 아직까지 쿨럭거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은 다시 운동하러 나오겠다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놨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어허, 목이 완전히 잠겨있었다.
보통사람보다 한 두 옥타브는 낮은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한 옥타브는 더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서
이대로라면 "애국가"를 부르다가 "삑"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약속은 지키는 남잔데 =_=V
그래서 올해 처음입어보는 긴팔 셔츠를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캐치볼을 하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공 하나 던지고 쿨럭, 공 잡으려고(외야수비) 뛰다가 쿨럭, 그러다가 공을 놓치고...
쩝,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늘도 무사히 아침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난 쿨럭쿨럭 거리고 있다.
이렇게 길어진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