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군대에 간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자주 온다.
바깥 세상에서 빌빌대고 있는 사람이 나 빼곤 별로 없다라는 사실도 작용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나는 "군대"를 체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대학교에서 술에 찌들어가고 있을때
나는 해군사관학교에서 기합에 찌들어가고 있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했었던 일을 지금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 라는 대답에서
나는 긍정적인 답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허리가 아파서 =_=;; 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때는 과제를 하기 위해서 새벽에 몰래 화장실에 숨어들어가서 과제를 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때는 수업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때도 수업시간에 존 적이 없었던 나였지만
일류 강사 분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사관학교의 우수한 수업에서도 대부분은 졸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수업을 마치고 부대(생도연대)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1학년들의 고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셀 수 없는 작업(청소, 내무정리, 보급품 수령 등...)에 시달리다가 저녁시간을 다 보내버리는 건
그나마 아주 양호하게 시간을 보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 곳의 군기는 일반 "군대"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빡세기 때문에...
하루종일 양호한 복장 상태(빳빳이 다린 근무복등...)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하며
아침에 이를 지적받을 경우 저녁이면 신나게 "깨질" 것을 각오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들로 1학년, 심지어 2학년들도
저녁이면 "훈련"에 찌들어가는게 일상화되어있었다.
2학년은 1학년을 깨지 않고 내버려두면 3학년들에게 깨졌었고
3학년은 2학년들을 깨면서 군기를 잡지 않으면 4학년들에게 깨졌었고
4학년들은 장교분들에게 잘못보이면 장교분들에게 깨졌었다.
이런 "군기"를 잡는 것이, 그 곳에서는 그 곳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곳의 목적 -우수한 장교양성-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었나보다.
뭐, 여기 문사에서도 군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계신 걸로 알고 있고
그러한 면에서 나는 그런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정말 강하신 분이라고... 말야.
그리하여 온갖 우여곡절끝에 다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온 뒤
나는 "그런 고생까지 해봤는데, 세상의 고생쯤이야 뭐 별거 있겠어?"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간에
"말도 안되는" 상황과, "자존심을 긁는" 상황은 어디에서든지간에 벌어지기 마련이었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즉
군대나 사관학교나 바깥 세상이나 그 본질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하여 또 새로이 깨달은 사실도 있다.
이런 불공평함은 언제든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불공평하고 말도 안되는 상황을, 쓸데없는 "군기"가 잡혀있는 상황을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가 통하는 상황으로 바꿀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P.S. 나의 사관학교 동기들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사관학교도 군기 잡는 전통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