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하는 가을햇살은
이제와서 기억해낸 것이지만, 8년 전에도 그러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만큼
무엇이든지 활자로 옮기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매년 한글날은 바빴다.
학창시절엔 백일장이니, 문학기행이니 하며 일상이 주는 나른함이나 따분함과
속절없이 매정하게도 작별인사를 고하며 잠시 일탈을 일삼던 날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요즘엔 그럭저럭 한글날이 왜 휴일이 아닐까를 생각한다.
올해는 동아리 공연이 10월 9일에 잡혔다.
사회로 환원된 능력충만한 나같은 인재가 아직도 학교의 대소사에 낀다는 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연주하는 악기의 희소성이나
그 악기 주자를 찾는 것이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과 견줄만한 고난임을 고려해볼 때
후배들이 나에게 '친히 방문하시어 후배들의 실력과 재롱을 보시는 동시에 함께 참여하여
형님/오빠가 애정을 듬뿍 보냈었던 이 동아리의 정기공연에 대박소스를 뿌려주심이 어떨런지..'
에 해당하는 요청에 흔쾌히 답해주는 것은 선배로서 당연한 자세라 하겠다.
비가 온다, 태풍이 온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야시바가 넘어간다, 조명을 빌린 곳이 연락이 안 된다.
조명이 꺼진다. 관객이 얼마 없다. 술이 모자라다. 선배가 많이 안 왔다...등등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공연은 절대 쉬이 성사되지 않는다.
태클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좌절은 금물이다.
더욱이 조명에 퓨즈가 날아가 암전이 되었을 때
'쪽박' 이라든가 '망했다'를 연호하며 울음을 터트리려는 한 후배를 잽싸게 다독이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구멍이 무너져도 솟아날 하늘이 있다'라고 말하여 후배로 하여금 눈물 대신 침을 튀기게 한
나의 개그센스를 확인할 때 나는 이 재능은 어느 조상님이 주신 귀한 선물일지 고민을 하였다.
결국 비도 안 왔고 태풍이나 바람 따위는 선선한 가을바람 정도였고
조명은 급히 다른 곳에서 빌려서 메꾸었고 퓨즈나간 조명도 신속하게 교체하였다.
태클이 문제였지 공연실력은 놀라웠다.
나는 근 몇 개월간 아이들이 연습하늘 걸 보지 못했던 터라
이리도 실력이 많이 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 만화, 소설 등에서 배울 수 있는 '졸업한 선배'의 이미지를 충실히 보여주고자
목에 힘을 주고 뒷짐을 지고 걸으며 '어험'이라든가 '이 형이 말이야 .. 이 오빠가 말이야..'를 입에
달고 다닐 생각이었으나 이쁜 모습들에 반해서 나는
공연 후 야시바 철거/음향 시스템 및 대형 스피커 철거라는 몸축내는 노동을 감행해버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는 극심한 근육통에 후회로 가득하다는 걸 내심 밝힌다.
공연 후 그 자리에서 자리깔고 앉아 관객들과 얼큰하게 한잔하고
그 뒤에 우리끼리 따로 술을 마셨다.
시끄러웠고 진솔했고 즐거웠으며 진득했고 사랑스러웠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더이상 술값이 없어 6차 술자리를 가지지 못하자
잔치가 끝났음을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가끔은 학생일 때가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같이 하는 사람들이 믿음직하고 든든할 때는 산다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그런 식의 삶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지금의 상황을 재편해야 하는가
혹은 지금의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특히 아버지의 전매특허 레퍼토리인 '고생 좀 해봐야 니가 정신을 차리지'라는 고진감래 모드로
좀 더 밝고 화창한 미래에 그러한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묵묵히 참고 견뎌야 하는가
라고 고민이 된다.
아, 그리고 내가 연주하는 악기는 사물놀이에 쓰이는 유일한 멜로디 악기이다.
10.12
좋았겠다.
우리 소리는 참 언제 들어도 흥이나고 좋은 거 같아.
학생일 때가 젤 좋더이다.ㅋㅋㅋㅋㅋ
어른들의 말씀은 틀린 게 없어.
그치만 나와 다른 건 있다고 생각해 :)
어른들의 말씀이 다 맞는 말씀이지만, 내 인생을 내 멋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내 경험담인 어른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