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밖에 나갈 일이 생겼다.
요새는 밤이면 제법 날씨가 쌀쌀해지길래
옷장 구석에 몇달간 잠자고 있던 나의 회색 "목티"를 꺼내입었다.
겨울이면 내가 입는 모든 옷의 첫단계가 되는 이 어두운 색의 목티를
나는 한 7년동안은 계속 입었던 것 같다.
이제 이걸 다시 입을 때가 된걸 보니까...
드디어 그 날이 다가오는 구나...
순간 착잡하면서도 설레이는 기분을 가슴안에 담고
일찍이도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로 나섰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온 몸을 파고드는 싸늘한 냉기.
이제, 그 길고 길었던 여름이 끝났다란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D-33 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봐도
별로 그렇게 심각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원래 근거가 불분명한 자신감에 항상 찌들어 있는지라, 긴장을 하질 않으니까.
하지만 온몸에 스며들어오는 이 찬 바람을 맞으며,
이제 곧, 이제 곧 심판의 날이 내게 다가올 것이며
자유를 향해 떠나간 나의 여정의 가장 중요한 갈래길이 펼쳐지리란 걸
내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