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에 갔다가 라면끓일 3천원짜리 냄비대신 천 오백원짜리 추리소설을 두 권 집어들었다.
선택.
항상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갈림길은 매일 아침 내 앞에 놓인다.
씻고 먹을까, 먹고 씻을까와 이걸 입을까 저걸 입을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일들은 나의 아침의 작은 사건사고를 일으키면 그만인게 되지만
라면냄비와 추리소설을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라면을 먹을지와 먹고싶은 것 뭐든 먹는 것 사이.
등록금의 해결과 미해결의 문제.
하루 중 절반 이상을 돈버는데 쓸지 공부하는데 쓸지.
고작 12월, 길면 내년 1월까지 내 인생의 그림을 결정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다.
이 선택이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하고싶다와 하고싶다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선택했을 때 둘 모두를 잡으려면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있는 중이다. 못할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실패했을 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거봐, 못할 줄 알았어..실패 할 법 하지 뭐.
몸 편하면서 하고 싶은 것은 포기하지 않으려니까 선택을 할 수 없었던거다.
몸도 편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는 보기문항은 없으니까.
무엇인가 포기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 사이에서도 나는 고민한다.
둘 다 피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겁하게 다른사람에게 선택을 미루었다.
그래놓고 바위 뒤에 숨어서 마음을 반으로 쪼개 놓고 반은 나를 포기해 주기를,
또 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과연 당시 생각대로 그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었는지 생각 중이다.
현명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비겁하고 유치했다.
초등학생 때 강아지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갔었다.
나는 강아지가 주사기앞에서 겁에 질려서 버둥대는 모습에 나도 겁을 먹었다.
주사를 맞는 동안 움직이지 않게 꽉 붙들고 있어야 했는데 강아지를 잡고있기 무서웠다.
강아지를 제대로 잡고 있지 않아서 몸부림 치다가 주사기에 잘 못 찔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친구가 나대신 용감하게 강아지를 잡아주었다.
예방접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품에 안으려는데 의사선생님이 친구에게 강아지를 안겨주며
나에게 이 강아지의 주인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예뻐할 줄만 알고 사랑할 줄 모른다고 했다.
싫은 것 힘든 것 피하고 싶은 지금 이 순간 갑자기 그 동물병원이 떠올랐다.
나도, 잘 잡을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강아지를 움직이지 않게 할 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동물병원에서의 일은 그 뒤로 쭉 내 인생에서 반복되어 왔다.
내 몸과 맘의 고생을 달게 감수하며 삶의 바닥을 뒹굴 의리가 나에게는 부족하다.
투정을 삼키고.
엄살을 버리고.
의연하게. 나를 믿어주자.
선택.
선택하자. 선택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