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아르바이트는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미팅을 가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심야시간, 틈틈의 시간을 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결국
일을 위해 애써 틈을 만들어야 하는지경에 이르렀다.
어제는 밤 11시 30분에 고용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침 일하는 중이었고 작업이 잘 되서 신이나던 차였다. 그런데다가 또
서른 중반의 미혼남자가 그 늦은시간에 전화해서 뭐해요~?라고 물으니
뭐, 그런대로 묘한 기분이 또 드는거다. 나 참.
가...가을이라 그런가?
나의 그런 울렁거림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고용주는 내게 협업을 요청했다. 그.시.간.에
작업하는 중이었다고 하지말고 자려던 참이라고 했으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까.
고용주는 나에게 두가지 선택질문을 제시했다.
빨리해서 새벽 2시까지 할건지, 더빨리 해서 1시반에 끝 낼 것인지.
이거 너무하는거 아니에요?!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열심히 해보겠다고 대답하고 있다.
내 입은 내 머리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 같다.
암튼, 그 때부터 미묘함은 다른 의미의 미묘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에이씨,,"에서 더 진도를 나갈까 말까 하는 미묘함? 아..그래 자주 있는 일 아니니까...하고 다독였다.
다른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을 툭! 놓는 모양새가 괜히 비위를 건드렸다.
나이가 월등히 많은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을.
이게 다 할 말을 제대로 못한 결과이다. 늘 좋은게 좋은거다로 산다고 믿었지만
내 맘속 깊이 아닌것은 아닌채로 쌓이고 있었던거다.
그리고 그 쌓인 것이 점점 몸집을 불려가다가 하필 적절하지 않은 사소한 순간에 빵 터져버리는 것이문제다.
시스템 점검 때 마다 늘 발견되는 만성적인 결함이지만 꼭 고장난 거기만 또 고장이 난다.
어제 나는 결국 3시까지 고용주의 손에 놀아나다가 오늘 1교시수업 15분 전에 기상하는 스릴을 맛보았다.
기숙사여서 지각은 면했지만 눈꼽이 다 없어졌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꽃다운 예쁜이들 사이를 누벼야 하는 일은 썩 씁쓸하다.
뭐, 사회생활로 갖은 고생을 하는 친구의 충고대로 할 말 하되, 정색하고 말하지 말고 웃으며 해야 한다는 그 기술을 나도 좀 습득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