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따끔따끔했다.
열까지 오르면 신종플루 의심환자라며 기숙사에서 내쫒길까봐, 어제 집에오자마자
수면을 3시간 취하고 오늘 아침 있을 쪽지시험을 공부해야 했으나..
3시간이나 잤는데 또 잠이 오겠어? 하면서 침대에 책을 들고 누워버린게 화근이었다.
뭐, 눕는 순간 어쩌면 공부할 맘은 없는채 였는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일찍 깨지도 않고 오늘 아침 알람이 울리도록 숙면을 한 것이다.
덕분에 오늘 시험보는 내내 머리가 맑았다.
정신이 너무 또렷해서 내가 외운게 없다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인식된다는 게 문제.
쪽지시험에 정신이 팔려있느라, 오늘이 수능을 보는 날 인것도 잠시잠깐 잊고 있었다.
수업 마치고 나오니 재수생 아이가 하나 죽어있었다.
하...마음이 아프다 아파.
'수능'하나만 바라보게 하니까 그게 너무 큰 두려움이 된 거겠지?
여러갈래 길이 있다고 생각할만한 여유가 아마 없었을테지.
남이랑 비교해서 남만큼 못하면 실패한거라고 생각하게 만든 여러가지 환경들이 문제였겠지.
자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기 위해 얼마나 큰 절망감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면서 참.
마음이 아프고 아팠다.
재수, 실패하면 삼수하면 되고 대학에 가면 꿈도 바뀔 수 있고, 길도 많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도 그 당시에는 주변의 이런말들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렸던 기억이 났다.
당장 선택을 해야 인생의 다음장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는 말이다.
고등학생 때 부터 시야가 넓어지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사는 다양한 방식들을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재수를 해서 대학이름을 높여놨으나 원치 않는 전공으로 고생하여 학점이 밑바닥을 헤메는 학생, 대학에 가서 동아리를 통해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하게 되는 일들, 뒤늦게 새로운 꿈을 가지고 대학원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들.
하.. 내 인생도 나름대로 방황하며 흘러왔네.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보면서 말이지.
뭐 심지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다가도 얼마든지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
일찍부터 꿈을 찾은 사람에게 수능은 참 좋은 기회이지만, 그것 아니어도 인생은 후지면 후진대로 맛있게 흘러간다. 그 맛을 보지 못한 것이 참으로 속이 상하다는 말이다.
나에게도 죽고 싶은 고비들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그 고비가 또 닥쳐올지도 모르지만, 고비를 넘고나면 알게되는 그 '맛'을 알고 있어서
이제는 죽고싶은 순간에도 내가 살아갈 것 임을 확신한다.
아마 이런 것을 내공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죽고싶던 그 순간들 덕분에 뭔가 적어도 얄팍하게 쌓여있는 것이겠지.
살 맛 안나는 인생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살 맛 안나는 상태는 있을지 몰라도.
이 공부를 시작한 동기는 '나'였지만, 뉴스를 보면서 그런 '당신들'을 위해 쓸모있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쪽지시험 망치고 푸념하려던 것이...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