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어가는 거미는 비명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침착함으로 없앨 수 있게 되었다.
숨어버리기 전에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는 긴박감 때문에 비명을 지를새조차 없다.
비명은 커녕, 거미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해주지 못하고 공존할 수 없다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다.
벌레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도록 오도방정을 떠는 여자가 있다.
누가봐도 사람이 벌레를 해쳤으면 해쳤지, 벌레는 묵묵히 제갈길 가는데 그 옆에서 서서 자지러지게 소리지르는 여자.
그게 나였다.
뭐, 바깥생활을 하며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이다.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나 대신 벌레를 없애줄 사람이 없다는 것.
불끄고 누워 벌레가 내 몸을 기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밤잠을 설치고 싶지 않으면 찾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 다음 변화는 씻고 닦는 일에 좀 더 관대해 진 것.
거지꼴을 하고 살던 친구에게 '청소좀 하고 살어'라는 잔소리를 했는데, 지금 나는 샴푸가 없어서 씻지를 못했다는 말을 하고는 비웃음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적어도 그 친구는 제 몸 하나는 깨끗하게 했었다.
뭐, 머리와 몸의 균형을 맞추고 싶은 마음에 벌인 일이라지만. 어쨌든 내가 그 친구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나는 야무지고 깔끔하게 살 거라는 자신감은 피곤 앞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발을 뗄 때마다 먼지뭉치가 붕~붕 떠오르길래 오늘은 방청소를 했다. 환기도 시켰다.
나와 몇 일밤을 보냈는지 모를 몇 마리 녀석들도 오늘 집행당했다.
잘가라. 걸레에 싸여 창밖으로 탈탈 털어내면서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방 반토막 닦고 걸레 빨고, 걸레를 열번은 빨아야 끝나던 방청소는 창밖에 먼지를 떨구어 내는 스킬을 익히면서 절절반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내 나이와, 그보다는 조금 이른 '아줌마'에 대해 생각했다.
아줌마. 그여자들은 고독한 '분리'를 겪어낸 용사들이었구나.
참. 나에게 그토록이나 어렵던 분리를 단숨에 완성시킨 한 가지, 사소하지만 그것은 '벌레잡기'였다.
그러면서 나는 구조요청을 그만두고 궁리하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백번 듣지만 말고 한번 보고 오라고 했지. 그래 맞다. 분리니 성숙이니 머리로 되는 것들이 아니다.
분리는. 떨어짐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기나긴 팀플레이를 마치고 이제 개인전에 돌입하는 중이다.
또 나는 언젠가 팀을 이루어 플레이를 하겠지만 어쨌거나 영원한 팀은 영원히 없다.
또 개인전에서 실력을 잘 쌓아야 팀플레이에서 좋은 시너지가 난다.
적어도 나는 어떤 팀을 만났을 때 이제, 해충처리 전담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청소를 오만생각 중에 마치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고. 문득 세수를 아직 못했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