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같은 나이의 사람을 앞두고, 선생님은 나도 저렇게 늙어보일까? 내 나이가 저렇게 보일 수 있는 나이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충격적인 오전을 보냈노라고 말씀하셨다.
교복을 벗으면서부터는 겉으로 보여지는 나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 된다.
나이가 드는게 참 싫어진다는 사람과 나이듦과 함께 찾아오는 여유가 반갑다며 내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나이에 관해서는 별다른 생각 없이 살고 있어서 맹하게 오가는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작년 무렵에는 친구들과 앉아서 어서 서른이 되버렸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했었다.
우리는 이력서 서류접수와 면접낙방의 시소를 엉덩이 부르트도록 타느라 진이 빠져있었고 갑자기 시작한 수험생활의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고 있었다.
일년 뒤 오늘, 우리는 취직을 하고도 재취직을 하기도 했고, 아직 구직 중이기도 하고, 목표를 접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 나름대로 만족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또 1차 수험생활을 마치고 2차 수험생활에 돌입하거나 오랜 고시생활을 접고 현실로 뛰어들어 돈버는 맛에 지난 3년간 마신 고배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들 생각했다. 어쩌면 서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생은 불안하고, 어쩌면 더 고되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이 오르내림이 생각보다 못할 짓은 아니라고도, 생각을 하는 중이다.
내가 예전에 보았던 스물 여섯은 완전한 어른이고 자유와 젊음이 있는 나이였다.
내가 지금 그런가?
그때 스물 여섯을 바라보던 중학생과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지만, 그것이 과연 '성장'인지는 모르겠다.
어떤면에서는 그 때보다 더 이기적이고 유치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나이 먹음은 시간이 알아서 해주는 일이지만,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나는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엇나갔던 그 때의 내가 지금 제대로 돌아온건지.
별 생각 없이 그린 사람과 나무와 집을 한참이나 보면서, 코에 걸면 코걸이인 해석이 아니냐는 반발이 들었지만, 그러기엔 해석이 지적하는 문제들에 마음이 너무 쿡쿡 찔리기에, 어쩌면 나는 아직 아무것도 손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더 성장하기 위한 그 턱을 내가 넘은건지. 아니면 직면하고 싶지 않아 더 깊이 쳐박아둔 건 아닐지.
앞으로 내가 나이듦이 좋아질지 싫어질지는 주어진 시간동안 성장을 하는지 마는지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항상 결론은 '그래서?'이지만, 뭐 늘상 방향만 잡아놓고 묻고 헤메며 찾아갔으니까.
뭐.서울로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