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편지라는 것이 어느 특별한 날에 귀속된 어떤 부록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라던지, XX야 크리스마스 잘보내 라던지.
그래서 가끔 내가 편지에 진심을 담고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남들하는 대사를 그날이니까 으레 해야하지않을가 싶어 하는.
근데 사실은 편지를 그냥 주기에는 참 쑥스러웠던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든 편지를 주고싶었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니깐 언제든 알콩달콩한 말을 써서
주고받고싶기는 했지만 그냥 평범한 날에 주기에는 내가 수줍은 탓이었음을.
한마디로 계기가 아니면 용기 낼 때가 많이 있진 않았다는 것.
편지를 주고싶은 사람들이 이 머리에 떠오르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나만은 아니다. 세상에 누구든 하나 이상의 행복을 타고난다.
세상에 살아있는 것, 그냥 지금은 아프지 않고 돌아다니고 싶은 만큼 돌아다니고
누구의 통제를 거부할 수있는 권리가 있고, 인간이고, 가족이 있고,이름이 있고...
다만 그 행복의 중요성을 느낄 계기가 우리에게 부족했을 따름이다.
내 친구중에 자살을 시도한 친구가 있었다.
꽤 최근에 겪은 것이라 달래주는데 많이 힘들었다.
개인적인 일, 자기의 정체성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나란 존재가 왜 이세상에 머무르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친구는 Creep라고 하는 노래를 자주 들었는데
마치 그 음악에 동화라도 된듯이 그 녀석은
난 이 세상에 있으면 안되는 데 라는 말을 했다.
"살면 뭐가 좋나?"
그애가 물어봤었을 때에는 대답을 못해줬고, 결국 한 며칠쯤에는 약을 먹었는데
한 사흘 자고는 일어났드란다. 그리고 그녀석은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식에는 웃으며 떠났다.
살면 뭐가 좋을까. 적어도 나는 삶이란 사형수의 유예기간이라 하겠다.
죽기전에. 예측할 수 없고 지극히 타의적인 죽음이라는 의식을 치루기 전에
하나쯤은 "니 꼴리는대로" 되는 일을 "너 스스로" 만드는 즐거움의 기간이 아니겠나.
그게 자의 라고는 거고, 결국은 삶과 행복이라 하겠다.
아직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여력과 가능성은 있다.
뭐, 지하철에서 어느 할아버님 말씀대로
"네깟게 겪어본게 몇개나 된다고 이러저러 씨부렁...!"
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당신이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있는 그런 편지를 주고싶었다.
근데 하다보니 어째 말투는 소설쓰는 분위기다...=ㅁ=....
매일 달콤 상큼한 투의 말만 하던 여태의 편지만 읽던 분은
이런 내가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ㅡ^; 간만에 문사 들어와서 내가 괜히 문사땡땡이 친건 아니군
하는 생각을 줄 수있었으면 했다.
이렇게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고 잔소리 하는 것이
애정이라는 것을!
이렇게 편지쓰고 싶게 만드는 매일매일의 계기가 되는 당신들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사랑받는 당신의 자아는 불행할 리 없다!
체리색깔 노을아래 있을 당신들을 상상하는 중.
그럼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