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내내 너는 울었겠지 나 또한 간밤 내내 울었다
날이 새오지만 내마음은 짙은 안개와 어둠뿐. 너의 모습은 그 안개
너머, 어둠의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밀란,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대.
너는 나의 곁에 있는데 너의 마음은 내곁에 없다. 몇개의 담장만
건너면 너를 볼 수 있고, 잠시 걸으면 너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 앞
에 다다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너와 얘기 할수 있는데
너는 너무나 먼곳에 있다. 내 앞에 있는 것은,
지치고 상처입은 너의 몸뿐.
하지만 널 원망 하지않아. 미워하지도 않아. 그럴수록 더욱더 너에게
로 가까이 가야 한다는 생각뿐. 내가 한 걸음 다가서면 너는 저만치 멀어져 가지만, 그래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승산없는 숨바꼭질
을 계속 하고 있지만, 널 사랑한다
나의 사랑은 돌이 킬 수 없는 수많은 죄를 저지르게 했다.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의 몸과 마음까지
파괴해 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널 사랑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되어야만 널 사랑할 수 있는 거
라면 난 세상에서 가장나쁜 마귀의 부하라도 될것이다.
알고 있다. 네가 영원히 나의 사람이 되지 않을 거란 것도, 내가 영원
히 너에게 용서 받지 못할 인간으로 남을 거란것도 하지만 그렇가 하더라도
널 사랑하는 날 말릴 수 없어.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은 나의 사랑이 네게 기쁨이 아닌 고통과 슬픔만
을 주었다는것. 아! 그토록 널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의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것. 나때문에 네가 괴로워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본다는건 나에게도 견딜 수없는 형벌이다.
지난밥 달빛이 비춰준 너의 몸은 아름다웠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모습을, 벗은 네 모습을 상상해왔는지 너는 모를테지.
궁전의 뜰에서, 말을 달리는 들판위에서, 화원을 가꾸는 너의
뒷모습에서 난 흥분한채 알몸의 너를 상상하곤 했다.
단 한번이라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갈 수 있
으리라 생각하며 딱딱하게 굳어오는 나의 몸을 감추었다.
하지만 지난밤, 그렇게 아름답던, 그렇게 꿈꾸던 알몸의 네 앞에서
난 초라하게 돌아서야 했다. 너는 벗은채 내 앞에 있었지만, 너의 눈은
국경을 건너 고구려땅에 있었다. 너의 영혼은 그 몸을 떠났고, 내
앞의 몸은 텅빈 벌판 같았다.
영원히 용서하지 않겠다던 내 앞에서 네가 옷을 벗어야 했던 이유를
안다. 그건 너를 살아 있게도하고 죽고 싶게도 만드는 바로 그 남자
때문이겠지? 그남자가 돌아오면 나는 네곁을 떠나든 죽든 해야겠지?
나의 친구 왕인. 내가 배신했던 남자, 그로부터 너를 빼앗으려 했던
남자. 그와 나는 이제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지.
비록 한 때는 목숨을 나눌 만큼 다정했던 친구였지만.
하지만 이 상자를 보낸다.
그것이 너를 위한 일이라면, 그가 돌아오는 것이 널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널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리는 일도 두렵지 않아.
널 사랑한다. 네가 날 미워하는 그 순간에도 난 너만을 사랑한다.
진심으로 이 돈이 네가 행복해지는데 쓰일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다시한번...
지난밤의 너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작년 겨울에 [천녀후에]를 읽었는데 이 편지가 너무 좋아서 빼껴 났었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운 얘기죠... 벼랑에서의 아사도와 아밀란, 특히 기억을 잃어버린척하며 오두막 집에서 안도와 살던 수시아... 이 책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었는데...
아직 읽지 않으신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