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묵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나를 위한 서시' 외
+ '나'를 위한 서시
'나'는
'너'가 아니다
끝없이 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다.
밤하늘의 별같이
빛나는 자존심을 가지고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신성한 권리요 의무이다.
이 땅에 한번 왔다 가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만의 빛깔과 모양과 향기의
꽃 한 송이 피워야 한다.
+ 나
나이 육십 가까워지니까
조금씩 내가 보인다
저 하늘에 흘러가는
한 점 구름
바닷가 백사장
모래알 하나
너른 대양의
물방울 하나처럼
작아도 티끌같이 작은
내 본래의 모습이 느껴진다.
꽃으로 치면
이름 없는 들꽃 같고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 같은
끝없이 넓은 세상 속
작디작은 내 모습이 보인다
늦은 감은 있지만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 자화상
오십 중반 넘어
이따금 거울을 들여다본다.
알 듯 모를 듯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어쩐지 슬퍼 보이는
한 사람의 모습이 있다
괜스레 밉기도 하고
안돼 보이기도 하는
홱 밀쳐버리고도 싶고
가만히 안아주고도 싶은
대체 저 사람은
누구인가
어쩌면 인생은
내가 내게로 가는 길
거울 앞의 나
거울 속의 나와 만남 속
내가 나를 알아가고
내가 나를 보듬고 사랑하는 일
아직도 나는
갈 길 아득히 멀다.
+ 나의 타인인 나
매일 한두 번은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거울 속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입니다
분명히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내가 있습니다
아!
나는 나의 타인입니다.
+ 마음의 거울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내 등뒤 한가운데 있는 점
그 작은 점 하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거울로 들여다보고
남의 얘기를 들으면
그 점이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평생을 살면서도
내가 나를 보지 못할 수 있다
내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나'라는 존재의
거짓 없는 모습을 알 수 있다.
+ 풀꽃과 나
바삐 길을 가다가도
풀꽃 하나 만나면
발걸음
절로 멈추어진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멈추어 선 그곳이
꼭 내가 있어야 할 자리 같다.
참 작기도 작은 것이
온몸으로 웃음꽃 피우는
그 모습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참 편안하다
세상 근심도 욕심의 그림자도
한순간 싹 사라진다
'나'라는 존재도
풀꽃과 한가지인 모양이다.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