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시인, 1962-)
+ 차를 마시다니
차를 마시다니
꽃이 피다니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기다니
꽃을 보다니
해변을, 파도 끝을, 신 벗어 들고 걷다니
웃음까지도 생기다니
배가 고프다니......
분노여 입을 벌려라
바다를 넣겠다
쏟아 넣겠다
분노여
변덕이 심한 짐승이여
바다를 모두 먹어라
바다여, 분노의 이름으로 영원히 철썩여라
(장석남·시인, 1965-)
+ 약속
자주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리.
하늘엔 갑자기 생겨난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겠지.
가장 일찍 따서 가장 늦게 질
하늘의 아이들아,
욕된 이름들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을 잊지 말고 굽어보고 지켜보렴.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쌓이고 고여서 썩어가는
골목과 거리와 집과 강물과 늪에
너희 아픈 빛을 오래오래 비추어다오.
폐허의 가슴에
떠나버린 사랑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약속을 되새기리.
자주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리.
(이재무·시인, 1958-)
+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7분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딜 떠돌고 있느냐
어느 어두운 심연에서
저 키 큰 바다의 울음소릴 듣고 있느냐
너는 지금 물소리에 싸여 내걸린
저 노오란 편지지에 쓴 글자들이 너의 바다로 가고 있는 걸 보고 있느냐
거대한 꿈 하나가 너의 꿈 위로 떠다니며
너의 가슴께에서 촛불을 들어올리고 있는 걸 보고 있느냐
그날 네가 떠난 항구에는 낮은 바람이 불고 있었지
네 걸음소리 모래에 자국을 내며 달리고 있었어
너는 웃으며 배의 날개를 붙잡았었지
출발의 입구, 날개를 붙잡았었어
그리고 웃었어
지영이, 준영이, 희명이, 정희, 순이, 금이, 유화……
모두 웃었어, 날개를 달고 웃었어
그리 꿈도 크더니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10시 17분
아, 지금 어디 있느냐
너를 찾는 조명탄 노오란 불빛
어느 파도 위에서 바라보고 있느냐
조명탄 노오랗게 날리는 파도 사이로
어디서 만리 꿈길에 희망 섞어, 구원 섞어
또 하나의 출발이 되고 있느냐
바다에도 뭍에도 추억의 가방들 발버둥치는데
너의 마지막 카톡은 2014년 4월 16일 10시 17분
희망도, 영원도 노오란 노오란 리본, 바람 부는 봄밤 10시 17분
이제 우리 모두 한 꿈 되어 누우리
불멸의 한 이불 노오랗게, 노오랗게 덮으리
(강은교·시인, 1945-)
+ 난파된 교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나희덕·시인, 1966-)
+ 분노는 파도처럼
묻노니 세월이여
이 악물고 조국을 버리고 가는 이의 마음을 아는가.
등 돌려 러시아로 가버린 빅토르 안이며,
씨랜드 화재로 여섯 살 아들 잃은 국가대표 필드하키선수 김순덕
김순덕이 훈장을 우체통에 던져버리고
머나먼 뉴질랜드로 떠나가서 사는 마음을
이제는 알겠는가.
묻노니 세월이여
익사를 폭사로 둘러대며 한 입으로 두말하는 뱀의 혀,
쥐새끼처럼 반들거리는 눈빛으로
없는 죄 뒤집어씌우려 증거서류를 위조하는 정보기관
지금도 여일하신가, 원장님도 안녕하신가.
충직한 아랫것들 노고로 수천수만 리플 귀고리로 달랑거리며
당당히 왕궁에 입성한 여인은
늙은 늑대들 좌우로 거느리고 건강하신가,
밥맛은 아직 좋으신가.
다시 묻노니 세월이여
분노는 일어나, 분노는 집채만한 파도처럼 일어나
비통한 에너지가 되고
기어이 태풍의 핵이 되고 말 것임에…….
물이 허리까지 차고, 가슴까지 차오르고
물이 얼굴을 휩싸고 캄캄한 죽음으로 끌어들일 때
국민소득 2만 6천 달러가 무색한 간판들, 우왕좌왕
빠진 쓸개를 찾아 허둥거릴 때
우리가 돌아가 기댈 정의가 있기는 있는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하늘이여, 2014년 4월 16일
저기 저 눈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침몰하는 세월이여.
(강인한·시인, 1944-)
+ 슬픈 고백 - 세월호 추모시
진정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울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내내 궁리만 하다 1년을 보냈어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아도
기도의 향불을 피워 올려도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어도
2014년 4월16일 그날
세월호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갈수록 큰배로 떠올라
우리가슴 속 깊은 바다에 가라앉질 못하네요
함께 울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함께 울지 못하고
잊지 않겠다 약속하고도 시시로 잊어버리는
우리의 무심한 건망증을 보며
아프게 슬프게 억울하게 떠난 이들은
노여운 눈빛으로 우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득 부끄럽고 부끄러워
세월호 기사가 나오면 슬그머니 밀쳐두기도 했죠
오늘도 저 푸른 하늘은 말이 없고
여기 남아있는 지상의 우리들은
각자의 일에 빠져 타성에 젖고
적당히 무디어지는데......
일주기가 된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컷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죄와 잘못을 참회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죄 없이 희생된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과
교사들 승무원들과 일반 가족들
구조하러 들어가 목숨을 잃은 잠수부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면서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않을까요
미안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두 주먹으로 가슴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끝나지 않은 슬픔이 그래도
의미 있는 옷을 입으려면
여기 남아 있는 옷을 입으려면
여기 남은 우리가
더 정직해지는 것
더 겸손하고 성실해지는 것
살아있는 우리 모두 더 정신 차리고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사랑을
배우고 또 실천하는 것
공동선을 지향하는 노력으로
신뢰가 빛나는 나라를 만드는 것
나비를 닮은 노란 리본보다
더 환하고 오래가는 기도의 등불 하나
가슴 깊이 심어놓는 것이 아닐까요
아아 오늘은 4월16일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과 제비꽃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곱게 꽃문을 여는데
그들은 우리와 같이 봄꽃을 볼 수가 없네요
물 속에 가라앉은 님들은
더 이상 웃을 수도 없고
더 이상 아름다운 수평선을
우리와 함께 바라볼 수가 없네요
죽어서도 살아오는 수백 명의 얼굴들
우리 대신 희생된 가여운 넋들이여
부르면 부를수록
4월의 슬픈 꽃잎으로 부활하는 혼들이여
사계절 내내 파도처럼 달려오는
푸른빛 그리움, 하얀빛 슬픔을 기도로 봉헌하며
이렇게 슬픈 고백의 넋두리만 가득한
어리석은 추모를 용서하십시오, 앞으로도!
(이해인·수녀 시인, 1945-)
*2015년 4월16일
+ 노란 리본을 묶으며
이런 눈물과 우울의 봄날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미안한 시간이다
나들이도 죄가 되는 시간이다
퇴근길에 청계천 변 난간에 노란 리본을 묶었다
나는 리본에 검은 글씨로 미안하다고 썼다
다른 나라에서 버린 배를 사들여서
여객 정원을 늘려 돈을 벌려고 구조를 변경하는
자본을 허가하는 나라
배 떨림이 심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나라
승객의 안전보다 선박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나라
비정규 저임금으로 선박 노동자를 자주 바꿔치는 나라
배가 기울자
"승객 여러분, 승무원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제자리에서 대기하십시오"
하고는 선장과 선원이 먼저 탈출하는 나라
정부에 보고할 승선 인원 파악에만 분주한
재난대책본부가 있는 나라
경제는 일류고 재난 대책은 삼류인
사람 중심이 아닌 돈 중심의 나라
한 사람의 죽음에서도 그 나라를 본다고 하는데
이런 수백의 죽음 앞에서 나는 나라의 침몰을 보았다
이런 나라의 정당에 가입하고 집단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광화문 촛불 앞에서
검은 글씨로 극락에서 행복하라는 메모를 붙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가 빨아서 넌 교복을 체육복을 입고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는 너희들에게 미안했다
(공광규·시인, 1960-)
+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적 일자리를 덜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그렇게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노동자 세월호에 태워진 이들이 900만명이다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야 할 곳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 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 넣었다
이런 자본의 재해 속에서
오늘도 하루 일곱 명씩 산재라는 이름으로
착실히 침몰하고 있다
생계 비관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알아서 좌초해가야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하 선실에 가두어진
이 참혹한 세월의 너른 갑판 위에서
자본만이 무한히 안전하고 배부른 세상이었다
그들의 안전만을 위한 구조 변경은
언제나 법으로 보장되었다
무한한 자본의 안전을 위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법제화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모든 안전의 업무가
평화의 업무가 평등의 업무가 외주화되었다
경영상의 위기 시 선장인 자본가들의 탈출은 언제나 합법적이었고
함께 살자는 모든 노동자들의 구조 신호는 외면당했고
불법으로 매도되고 탄압당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은 언제나 자유로운 합법이었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만 전가되었다
그런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 처참한 세월호에서 다시 그들만 탈출하려는
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세월호의
선장으로 기관장으로 갑판원으로 조타수로 나서야 한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평형수로 에어포켓으로
다이빙벨로 긴급히 나서야 한다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송경동·시인, 1967-)
+ 국가를 구속하라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였다
국가가 국민들을 산 채로 수장시킨 것이다
캄캄한 바다 속에 너희들을 묻어두고
비겁한 아빠는 아직 숨이 붙어 있구나
꾸역꾸역 밥 밀어넣고 있구나
아이들아,
이 닷냥 서푼어치도 못 나가는 시인을 우선 구속시켜 다오
어떤 벌이든지 달게 받겠다
뿌리부터 가지까지 몽땅 썩어빠진
국가를 먼저 구속시켜 다오
(유용주·노동자 출신 시인, 1960-)
+ 스물두 살 박지영 선장!
최초에 명령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만있어라, 지시에 따르라, 이 명령은
배가 출항하기 오래 전부터 내려져 있었다
선장은 함부로 명령을 내리지 말라, 재난대책본부도
명령에 따르라, 가만있어라, 지시에 따르라
배가 다 기운 뒤에도 기다려야 하는 명령이 있다
목까지 물이 차올라도 명령을 기다려라
모든 운항 규정은 이윤의 지시에 따르라
침몰의 배후에는 나태와 부패와 음모가 있고
명령의 배후에는 은폐라는 검은 손이 있기에
이 나라는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걸 기억하라
열정도 진정성도 없는 비열한 정부, 입신출세와
대박 챙길 일밖에 아무 관심도 없는 자들의 국가,
선장은 단순잡부 계약직, 장관은 단순노무 비정규직
그들이 내릴 줄 아는 명령은 오직 한가지뿐
가만있어라, 명령에 따르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서해훼리호가 침몰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불타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안개처럼 흩어지고, 슬픔은 장마처럼 지나가고
아, 세상은 또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재난 따윈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저들
촛불시위와 행진과 민주주의가 더 큰 재난이라 여기는
저들이 명령을 하는 동안은, 결코
하지만 우리는 저 고귀한 지시를 따른다,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노련한 선원들이 첫 구조선으로 달아난 그 시각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다!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끝내 오르지 못한 박지영, 선장!
우리는 그 정신을 따른다, 그 고귀한 명령을!
(백무산·시인, 1955-)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세월호' 참사에서 계시를 듣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전남 진도 앞 바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생 325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
하필 꽃 피는 봄날
꽃다운 젊음의 남녀 학생들의
어처구니없는 몰사 소식에
온 국민이 놀라고 가슴 아파한다.
침몰이 시작된 직후
몸을 가눌 수 없이 흔들리는 선실에서
한 여학생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