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시 모음> 정연복의 '바람의 노래' 외
+ 바람의 노래
바람을 등지지 말자
바람을 겁내지 말자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바람을 맞으며
가슴 가득히 바람 안고서
바람의 들판을
거침없이 달려가자.
한세상 살아가면서
바람이야 피할 수 없는 것
불어오는 바람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자.
한 송이 작은 풀꽃도
바람의 춤을 추거늘
바람 더불어
가벼이 흔들려 주자.
바람도
늘 한줄기 목숨이라서
세차게 부는 바람도
머잖아 잦아들고 말리니.
+ 이슬의 노래
나는 한 방울
눈물
티없이
맑디맑은 슬픔
풀잎이나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갑니다.
깜깜한 어둠 속
찬 공기 속에 태어나
아침햇살 받아
한나절 빛나는 보석이다가
흔적조차 없이
고요히 사라집니다
눈물 말끔히 씻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 담쟁이의 노래
끝내 오르지 못할 벽은
세상에 없다
아득한 하늘같이
높아만 보이는 벽도
온몸 바싹 낮추어
부둥켜안으면
낮은 포복으로 가기에는
안성맞춤의 길.
아찔한 높이에도 겁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만 나아가면
마침내는 그 벽의 끝에
가닿을 수 있으리.
+ 민들레의 노래
저기 저 하늘은
너무 높아
바라만 보면 그뿐
가 닿지는 못해도 좋아.
내가 살아갈 곳은
바로 여기
땅에 바싹 몸 붙여
있는 걸로 족해.
땅딸보에
몸매는 무척 날씬한데
얼굴은 무지무지 커
왠지 불균형한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나의 환한 웃음에
홀딱 반하고 말지.
+ 시냇물의 노래
나는 산골짜기나 들에 사는
한줄기 작고 얕은 물
가뭄 들면
잠시 끊기기도 하고
홍수가 나면
잠깐 넘치기도 하며
모자란 듯
넉넉하게 살아갑니다.
지금은 비록
좁고 작은 물줄기이지만
내 품에 나보다 더 작은
물고기들도 기르고
즐거이 노래 부르며
이렇게 쉼 없이 흐르다 보면
너른 강물도 만나고
하늘같은 바다에도 닿으리니
오늘도 졸졸 졸졸졸
희망가를 부르며 흘러갑니다.
+ 바다의 노래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물결 타고
힘찬 뱃고동 울리며
저 수평선 끝까지 흘러가리라
세상살이 온갖 다툼과 시름도
바다의 너른 품에 들면
거품같이 사라지는 것
거센 폭풍우 뒤에는
숨 멎을 듯 잔잔한 평화가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를
영영 떠나지 않으리
훨훨 수평선을 날으는
갈매기의 자유로움
대양을 유유히 누비는
고래의 기상과 용기를 품고
막힘도 멈춤도
찰나의 쉼도 없이
생명이 물결치는 곳
이 광활한 바다를 벗삼아
나 영원히 살리라
+ 술의 노래
나는 만인의
아주 오래된 연인
언제든 서슴지 말고
나를 찾아오세요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그냥 당신의 모습 그대로
내 가까이 오세요.
생의 기쁨 찬란한 날이나
삶의 슬픔 깊은 날에도
나는 그 기쁨과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리니
당신의 마음
감출 것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내게 솔직히 보여주세요.
+ 목수 예수의 노래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네
'사랑'이라는
집 한 채를 짓고 싶다네
인정이 메마르고
사랑이 턱없이 모자라서
각박하고 살풍경한 세상의
어느 한 모퉁이에
사람의 온기가 감도는
작은 집 하나를 짓고 싶다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배움은 그리 많지 않아도
생명을 아끼고 보듬는
착한 마음씨는 변함이 없는
세상의 작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맑고 순수한 뜻을 모아
사랑의 따스한 기운이 넘치는
예쁜 집 한 채 만들어가고 싶다네.
사람들은 나를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아들'이라 칭송하지만
그런 거창한 찬양은
내게는 썩 어울리지 않는 것.
내 가슴속 단 하나의
꿈과 희망은
그저 작고 볼품없는
사랑의 집 한 채를 짓는 것뿐.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