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시 모음> 이홍섭의 '달맞이꽃' 외 + 달맞이꽃 한 아이가 돌을 던져놓고 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 돌 같던 첫사랑도 저러했으리 그로부터 너무 멀리 왔거나 그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못했다 (이홍섭·시인, 1965-) + 첫사랑 그리움만으로 싱그럽다 생각하면 입안 가득 신맛 돌게 하는 생의 탄력 가지 끝에서 흔들리던 풋살구 하나 (최대희·시인, 1958-) + 첫눈에 첫눈에 혹해서 첫눈에 홀딱 반하여 첫눈에 몸과 맘 다 빼앗겨 첫눈에 넋을 잃으니 첫눈에 슬픔뿐이다 (박해석·시인, 1950-) + 첫사랑 가난뱅이 딸집 순금이 있었다 가난뱅이 말집 춘봉이 있었다 순금이 이빨로 깨뜨려 준 눈깔사탕 춘봉이 빨아먹고 자지러지게 좋았다 여기, 간신히 늙어버린 춘봉이 입안에 순금이 이름 아직 고여 있다 (서정춘·시인, 1941-) + 첫사랑 나를 생각하면 꽁꽁 언 네 마음에 싹이 돋는다 했지 한 술 더 떠, 나는 꽃까지 피었다 했어 네 생각하다 보니 수없는 꽃이 지고 그리움만 열렸는데 내 마음 받아 줄 너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윤보영·시인) + 첫사랑 별을 보고 싶으냐 참아라 열다 보면 구겨지나니 아픈 기억도 세월 속에 묻어두면 꽃이 된다는데, 내게 너만 한 꽃이 또 있을라고 너보다 더 붉은 꽃 또 있을라고 (민영기·시인) + 첫사랑 그 여자를 만났다. 손도 못 내밀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참으로 오랜만이오. 삼십 년 동안 생각해 낸 말은 겨우 그 한마디였다. 몽매에도 그립던 사랑. (정성수·시인, 1945-) + 첫사랑 잠깐 냉동실에 보관했던 방아잎 때문에 구운 생선에서도 볶은 멸치에서도 온통 방아잎 냄새다 여기저기 향기가 범람한 흔적 꽝꽝 얼어붙은 속을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 굽고 튀기고 볶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남아 있는 냄새에 걸려 자꾸 울컥거린다 네가 나를 다녀가서 생긴 일이다 (문숙·시인, 경남 하동 출생) + 첫사랑 남사스럽네유 늘 제게 주는 情, 그냥 나무 끄트머리에 매달아 주세유 그걸 보고 올게유 십년 혹은 이십 년 후라도 그 나무 끄트머리에 내 남사스러운 情 꼭꼭 묶어 눌게유 기다리지 마세유 (임영석·시인, 1961-) + 첫사랑 그 사람은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 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파라, 내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려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울고 있었네. (박재삼·시인, 1933-199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