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시 모음> 천상병의 '연기' 외 + 연기 나무가 타면 연기가 나고 그 연기는 하늘하늘 올라간다 나는 죽으면 땅속인데 그래도 나의 영혼은 하늘에의 솟구침이어야 하는데 어찌 나의 영혼이 나무보다 못하겠는가? 죽은 다음에는 연기이기를 (천상병·시인, 1930-1993) + 영혼은 잠들지 않고 내 영혼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으니 바위도 눈을 뜨고 살아서 흐르고 있는 강물이며 저 숲 속을 빠져가는 바람은 모두 나의 호흡이다. 낮에 눈을 뜨는 것은 영혼이 아니다. 영혼은 모든 것들이 눈감을 때 비로소 눈을 뜨나니 언제나 푸른 별들과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황금찬·시인, 1918-) + 바다 바다는 영혼과 영혼의 만남의 형식이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봉변당한 얼굴의 바람이 있고 나체의 해변이 있지만 바다는 영혼의 방정식이다 그 바다에 손을 짚고 누가 일어선 적이 있다 (임선기·시인, 1968-) + 내 영혼의 바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내 안에 쉴 수 있는 작은 바다를 찾아 떠납니다 외롭다고 느껴질 때 내 영혼의 푸른 바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맛보며 사랑의 낚싯대를 던져 봅니다 (염정화·시인) + 내 영혼에 날개가 있다면 내 영혼에 날개가 있다면 어떤 빛으로 채워야 할까 그댈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오를 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그대 사랑해 기쁨이 타오를 땐 어떤 웃음을 지어야 할까 내 영혼에 날개를 달아 그대 계신 저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면 한 아름 사랑 따다 날 채워줄까 내 영혼에 날개가 있다면. (김세실·시인, 1956-) + 영혼의 침묵 영혼은 내 안에서 침묵한다. 가장 고요한 시간 목숨의 심지에서 영혼이 깨어나 불꽃으로 타오르면 나의 육체는 그릇이 되어 이끼 낀 샘물로 맑게 고이 떤다. 그를 위해 조금씩 몸을 비운다. 기도 속에 촛불이 그림자 떨듯 그는 내 안에서 물을 길으며 노래한다. 내가 하나의 갈대로 서서 사색하며 별을 지키는 밤에도 바람으로 아니 눈물을 넘어서서 나를 밟고 신비한 피리 분다. 등잔이 비어 있을 때만 영혼의 아름다운 피리소리가 들린다. 타오르는 춤이 보인다. 그 밤에만 그에 귀를 밟히고 섰거니 나의 몸은 이 영혼을 모시는 사원 그를 위해 여기 돌아와 섰다. 그가 타오르면 조금씩 나를 하늘로 길어가고 다시 우주의 침묵을 내려 내 등잔을 채우는 시간 나는 이 땅에 떠 있는 석등 조용히 그를 불 밝히는 그릇. (이성선·시인, 1941-2001) + 영혼 결혼 새 한 쌍 날아갑니다 하늘 벼랑 돌아 구름 속으로 깊은 숲을 헤치고 강을 건너 지평선 너머 지평선 너머 세상 끝 그 어디라도 함께 가고저 (이길·시인) + 영혼의 강물이 흐르고 울지 말아요 눈을 떠봐요 그리워 아픈 가슴인가요 시리도록 아픈 것이 사랑이래요 그 아픔 그 눈물이 그대 청아한 가슴에 소중한 영혼 새기는 것이기에 순백의 영혼을 나누는 사랑이래요 슬퍼하지 말아요 흐르는 사랑이 각인되어 가슴 가득 울려오는 전율을 느껴봐요 이제 웃어요 사랑의 행복으로 별이 곱고 달빛이 웃고 있어요 이제 느껴요 사랑의 환희를 순백의 영혼으로 함께 느껴봐요 들리나요 시리고 아픈 것이 우리 사랑 하나임을 말하고 있어요 보이나요 그래요. 이렇게 하나가 되여 맑은 영혼의 강물이 흐르고 있어요 (이재기·시인, 1938-) + 깨어난 영혼의 고독 어쩌면 우리 영혼 안에 큰 불이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그 불을 쬐러 오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란 굴뚝에서 나오는 한 줄기 연기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만다.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화가, 1853-1890) + 불빛이 꺼진다 막이 내리고, 연극이 끝난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에게 연극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는, 박수갈채가 울렸다고 믿는다 존경하는 청중들은 그들의 극작가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이제 극장은 고요하다 환호와 빛은 사라졌다 그러나 돌아보라! 초라한 한 덩어리의 음향이 황량한 무대 저쪽에서 울려온다 아마도 하나의 현이 낡은 바이올린에서 끊어지는 소리, 아래층 객석에서는 몇 마리 쥐들이 기분 나쁘게 바스락거리고 썩은 기름 냄새를 풍긴다 마지막 램프가 가망 없이 <파>하고 심지가 닳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꺼진다 가련한 그 불빛이 내 영혼이다. (하인리히 하이네·독일 시인, 1797-1856) + 영혼이 썩지 않게 하는 방법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라. 그들에게 스스로 무게를 갖게 하라. 겨울날 아침, 단 하나의 사물이라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 성공한다면, 비록 그것이 나무에 매달린 얼어붙은 사과 한 개에 불과하더라도 얼마나 큰 성과인가! 나는 그것이 어슴푸레한 우주를 밝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막대한 부를 우리는 발견한 것인가! 열린 눈을 가질 때, 우리 시야가 자유로워질 때, 신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필요하다면 신조차도 홀로 내버려두라. 신을 발견하기 원한다면, 그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를 만나러 가고 있을 때가 아니라 그를 홀로 남겨 두고 돌아설 때다. 감자를 썩지 않게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당신의 생각이 해마다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혼이 썩지 않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수행을 계속하는 일 외에 내가 배운 다른 것은 없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미국 시인, 1817-1862) + 카프카의 가르마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 밤에는 글쓰는 고독한 작가 사진 속 카프카의 머리 가르마는 내가 보는 시선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2대 8로 단정히 나뉘어 있다 보험회사 직원이 2라면 작가가 8일 거라는 생각 밥벌이와 영혼의 관철이 2대 8일 거라는 생각의 연장이 카프카의 사진이다 쓰고 싶은 욕망은 밥벌이에 비해 네 배는 더 무게가 나간다는 등식이 카프카의 가르마다 카프카는 고독한 불면의 밤을 지새면서 여러 번 타오르고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문장을 불살랐다가 다시 소생시키는 거대한 불을 만났을 것이다 카프카의 밤은 격리되어 있었다 그 긴 밤의 어느 순간에 상처가 터져버린 것이다 밤이나마 밥벌이를 잊을 면죄부를 주는 건 불의 제의다 내 안에서도 불이 일어나 모든 상념을 태워버리길 영혼의 궁핍을 깨닫기까지 밤이여, 새지 말기를 (정철훈·시인, 195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