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사제 시 모음> 작자 미상의 '사제의 아름다운 손' 외 + 사제의 아름다운 손 우리가 인생의 유년기를 시작할 때 삶의 마지막 여정을 마치는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사제들의 손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 베푸는 참된 우정의 체온을 우리는 그 손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성체 성사를 통해 죄에 물든 우리를 천사처럼 순결하게 만드는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아름다운 손. 매일매일 제단에서 바치는 미사를 통해 어좌에 앉은 임금의 모습을 보듯 우리는 그의 손을 보느니. 사제들 자신의 장점과 위대함이 아무리 결여된다 해도 사제의 품위는 항상 빼어나고 아침의 고요 속에 태양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낼 무렵 영성체로 우리를 주님과 일치시키는 깨끗한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아름다운 손. 나약한 우리가 시시로 죄와 유혹에 빠져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그 부끄러움, 그 잘못 단 한번도 아니고 거듭거듭 사해주는 거룩한 손, 사람들이 인생의 반려자를 구해 결혼식을 올릴 때 주님께 대한 사랑의 약속으로 수도 서원을 할 때 다른 손들은 잔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지만 사랑의 약속을 하나로 묶어 축복해주는 고마운 손, 그 손은 다름 아닌 사제의 아름다운 손 그리고 마침내 그 어느 날 우리의 눈썹에 죽음의 슬픈 이슬이 맺힐 때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는 손, 주님의 영원한 축복 속에 우리의 두 눈을 감겨주는 아름다운 사제의 손을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작자 미상, 이해인 수녀 역) + 은총의 사람들이여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이 축성된 그리스도의 사제여 사막에 피어난 선인장 꽃이 유난히 돋보이듯 세상이란 사막에서 존재 자체로 우리의 기쁨을 더해주는 그리스도의 사람이여 온 우주에 빛과 생명으로 스며드는 하늘의 태양처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우리를 키워주는 지상의 태양 사제여 힘차고도 고요한 빛으로 우리에게 오십시오 그리스도의 진리로 세상의 죄악과 부패를 막아 더욱 빛나는 하얀 소금으로 오십시오 세상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많은 물고기를 낚아 올릴 그리스도의 어부여 때로는 버림받은 예수님처럼 고뇌의 땀을 홀로 닦으며 깨어있을 고독한 구도자여 용기를 내소서 그대 곁엔 우리의 기도가 물 흐르고 있음을 항시 기억하소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감사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은총의 사람이여 그대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초록빛 창문이니 언제나 그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사제여 그대의 전 생애가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첫 미사이길 축원하는 우리의 이 간절한 마음을 기쁨의 노래로 받아 주십시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길 위의 신부 - 문정현 미 대사관 앞이나 매향리 사격장에서 경찰방패를 부여잡고 삿대질하며 욕질하는 신부 폭포를 거스르는 연어의 열정으로 이 땅의 한밤중을 걷어차는 저 구릿빛 신념 성당 안에서 예수를 가르치라는 충고는 들은 척 않고 현장에서 몸으로 설교하는 그의 다림질에 이 땅의 모양새가 잡혀가는가. (전홍준·시인, 1954-) + 고해성사 나는 오늘도 나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네 내가 나를 가둔 죄 나의 이웃을 가둔 죄 내가 나를 욕한 죄 나의 이웃을 욕한 죄 내가 나를 배신한 죄 나의 이웃을 배신한 죄 나는 오늘도 나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네 내가 나의 가슴을 닫은 죄 나의 이웃의 가슴을 닫게 한 죄 내가 나의 눈빛을 흐린 죄 나의 이웃의 눈빛을 흐리게 한 죄 내가 나의 입술에 피 묻힌 죄 나의 이웃의 입술에 피 묻히게 한 죄 나는 오늘도 나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네. (허형만·시인, 1945-) + 신파조 고해성사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집에서 놀기로 했습니다 걱정은 그만하세요 조금씩만 먹을 겁니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습니까 집도 있고 몇 달치 끼니도 있습니다 경제가 워낙 어렵잖아요 저의 무능이라기보다는 세상이 무능한 것이겠죠 회사가 사람을 몰라봅니다 정치가들이 너무 썩었어요 국회가 그게 뭡니까 공무원들은 또 왜 그래요 저라도 바로 서야죠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 교통신호 한 번 어긴 걸로 합시다 차선 한 번 넘은 걸로 합시다 음주로 운전 한 번 한 걸로 합시다 걱정 마세요 신부님 (윤순찬·시인, 경북 청도 출생) + 사제의 어머니 얼마큼 영혼이 맑으면 주님이 간택을 하실까 얼마큼 심성이 고우면 신비의 꽃봉오리 활짝 피게 하실까! 예수님 따라 고난의 길 굳센 믿음으로 봉헌하고 가슴 졸이며 기도로 바쳐온 세월 온 마음 다하여 바치는 첫 미사에 가슴 쿵쿵 뛰며 기쁨이 솟아오르고, 빵이 되어 오시는 그분 안에서 울컥 감사의 눈물 가슴으로 차오르네 진정한 사제의 길 멀고도 험하여라 고비고비 세상 유혹 주님께 드리며 미천한 한 목숨 친히 종으로 부르셨으니 한평생 기도의 깊은 샘물 길어 희생의 순결한 꽃불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겸손과 사랑으로 이끌게 하소서! (김세실·시인. 1956-) + 회개 기도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은 나의 허물들과 죄악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주시고 성령의 불로 나의 죄악을 모두 태워 주소서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회개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까지도 내가 회개하지 못한 부분들을 기억나게 해주세요 더 기도할 수 있도록 회개의 영을 내게 부어주시옵소서.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살다가 내 영혼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 품에 안아주시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으로 경배와 찬양 드리게 하옵소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온기은·시인) + 천국에서 보내온 김수환 추기경의 편지 제가 그나마 그런데로 욕 많이 안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의 덕분입니다. 성직자로 높은 지위에까지 오른 것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 그분의 덕입니다. 속으론 겁이 나면서도 권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부자들과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는 유혹이 많았지만 노숙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화가 나 울화가 치밀 때도 잘 참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의 덕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유머로 넘긴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나중에 내가 보고도 약간은 놀란 내가 쓴 글 솜씨도 사실은 다 그분의 솜씨였습니다. 내가 한 여러 말들 사실은 이천년 전 그분이 다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분의 덕이 아닌 내 능력과 내 솜씨만으로 한 일들도 많습니다. 빈민촌에서 자고 가시라고 그렇게 붙드는 분들에게 적당히 핑계 대고 떠났지만 사실은 화장실이 불편할 것 같아 피한 것이었습니다. 늘 신자들과 국민들만을 생각했어야 했지만 때로는 어머니 생각에 빠져 많이 소홀히 한 적도 있습니다. 병상에서 너무 아파 신자들에게는 고통 중에도 기도하라고 했지만 정작 나도 기도를 잊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훨씬 못한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이제 저를 기억하지 마시고 잊어 주십시오 대신 저를 이끄신 그분 죽음도 없고, 끝도 없으신 그분을 쳐다보십시오. 그분만이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그분을 쳐다보십시오. -천국에서 김수환 스테파노- (여기서는 더 이상 추기경이 아닙니다) (작자 미상)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