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시 모음> 칼릴 지브란의 '그 깊은 떨림' 외 + 그 깊은 떨림 그 깊은 떨림 그 벅찬 깨달음 그토록 익숙하고 그토록 가까운 느낌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껏, 그날의 떨림은 생생합니다 단지, 천 배나 더 깊고 천 배나 더 애틋해졌을 뿐 나는 그대를 영원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이 육신을 타고나 그대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그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운명 우리 둘은 이처럼 하나이며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습니다 . (칼릴 지브란·레바논 시인, 1883-1931) + 당신의 꽃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김용택·시인, 1948-)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의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시인, 1879-1944) + 나 그대의 풍경이 되어 주리라 나 그대의 풍경이 되어 주리라 그대 갈매기 되어 날아가면 나 잔잔한 바다 되어 함께 가고 그대 비를 맞으며 걸어가면 나 그대 머리 위 천막 되어 누우리라 그대 지쳐 쓰러지면 나 바람 되어 그대 이마 위 땀 식혀 주고 여름 밤 그대 잠 못 이뤄 뒤척이면 방충망 되어 그대 지켜 주리라 눈이 와서 그대 좋아라 소리치면 난 녹지 않는 눈 되어 그대 어깨 위에 앉고 낙엽 떨어지는 날 그대 낙엽 주우면 난 그 낙엽 되어 그대 책 안에 갇히리라 그렇게 언제나 그대 있는 곳에 나 그대의 풍경이 되어 주리라 (여경희·시인, 1972-) + 청혼 외로움이 그리움이 삶의 곤궁함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작은 옥탑방에서도, 그대를 생각하면 까맣던 밤하늘에 별이 뜨고, 내 마음은 이마에 꽃잎을 인 강물처럼 출렁거렸습니다. 늦은 계절에 나온 잠자리처럼, 청춘은 하루하루 찬란하게 허물어지고, 빈 자루로 거리를 떠돌던 내 영혼 하나 세워둘 곳 없던 도시에, 가난한 시인의 옆자리에 기어이 짙푸른 느티나무가 되었던 당신. 걸음마다 질척이던 가난과 슬픔을 뒤적여, 밤톨 같은 희망을 일궈주었던 당신. 슬픔과 궁핍과 열정과 꿈을 눈물로 버무려 당신은 오지 않은 내일의 행복을 그렸지요. 그림은 누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눈이 시렸을 뿐! 수많은 기억들이 봄날의 벚꽃처럼 흩날려버릴 먼 훗날, 어려웠던 시간, 나의 눈물이 그대에게 별빛이 되고 나로 인해 흘려야했던 그대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다시 별빛이 될 것입니다. 가을을 감동으로 몰고가는 단풍의 붉은 마음과 헛됨을 경계하는 은행의 노란 마음을 모아, 내 눈빛이 사랑이라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의 마음속으로 숨어버린 그날 이후, 내 모든 소망이었던 그 한마디를 씁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푸른 하늘에 구름을 끌어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대의 사랑에 대하여 쓰며 천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날들입니다. (조기영·시인, 1968-) *고민정 아나운서에게 바친 청혼시 + 청혼가 꿈 많은 그대와 영원의 꽃을 피우고자 빛을 발하면서 서로 간직한 열정인데 관용과 포옹, 축복으로 내일을 잉태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으며 꿈길을 거닐 날은 언제일까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청혼가 봄이 오면 사랑하고 싶어요 아름다운 여인은 필요 없답니다 미인박명이니까요 꼭 얼굴값을 하더라구요 풍요로운 사람도 필요 없답니다 돈이야 벌면 되니까요 그저 신체 건강하고 오직 나 하나만을 사랑해 줄 그런 여인이면 된답니다 그런 여인을 만나면 열한 명의 아이를 낳을 거예요 꼭 일 년에 한 명씩 낳을 거예요 야구팀 만들 거냐구요? 아니랍니다 축구팀 만들 거냐구요? 그것도 아니랍니다 토끼 같은 자식들 아장아장 걸음마 배우고 또랑또랑 말 배우면 전철이랑 육교랑 강남역에서 앵벌이를 시킬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는 울 여보야랑 등 따시고 배 터지게 행복하게 살고 시포욤 어디 이런 여자 없수? 나 이뽀? 이쁘징 이쁘징 (강효수·시인, 전북 남원 출생) + 어떤 청혼 하루라도 너를 못 보면 죽을 것 같고 너를 안고 싶어 환장하겠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나한테 시집와라 죽어도 네가 해주는 밥을 먹어보고 싶다만 정히 부엌일에 취미가 없다면 내 친히 빨래와 더불어 밥도 해보마 밤마다 나는 네 꿈을 꾸느라 미칠 지경이다 잠도 못 자고 아침마다 얼굴이 말이 아닌데다 툭하면 조느라 직장에서 짤리게 생겼으니 기본적인 양심 있다면 나 짤리기 전에 잽싸게 와라 뭐 그리 잘났다고 튕긴단 말이더냐 지금의 네 모습 빠짐없이 사랑하느니 다이어트니 뭐니 쓸데없는 시간 죽이지 말고 하루 빨리 나한테로 안겨오란 말이다 시집오면 밥은 안 굶길 테니 걱정 말고 아이 낳고 살림하다 펑퍼짐해질지라도 여전히 이뻐할 터이니 그만하면 과분하지 기사처럼 네 앞에 무릎꿇진 못하겠다 별을 따주겠느니 그런 얍삽한 말도 하지 못하겠다 다만 나는 무식하게 너를 사랑하느니 오직 너와 함께 한 인생 부벼볼 참이란다 (작자 미상) + 프로포즈 강 보러 갈까요? 산 같은 그대에게 물었더니 그대 깊은 가슴을 쪼개고 갈라 계곡을 열어주더이다. 작은 보고픔일지라도 굴렁쇠 몰듯 먼 길 아주 잘 몰아간다면 그리움도 출렁거려지고 등 떼밀며 함께 흘러가는 강물도 오는 법이라고. 그 강물 퍼지는 곳에서 들판으로 누워 낮밤 포개 사랑하면 곡식 자라고 미루나무가 선 집 한 채 닿을 수 있다고. 그 집에서 강 키워 방목하다 보면 그윽한 함께의 삶 살아질 수 있노라고. 강 보러 갈까요?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로포즈였다고 그대 내게 말하더군요. (김하인·시인, 1962-) + 101번째 프로포즈 오늘 드디어 백한번째 프로포즈를 합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화창한 햇볕을 가슴에 앉듯 마음은 가늘게 떨려옵니다. 상대는 내가 제일 첫번째 깡통처럼 차버린 바로 그때 당신입니다. 그간 100번의 프로포즈는 제 허영(虛榮)이었습니다. 깨우친 지금 나는 콩알처럼 작아져 있습니다. (김낙필·시인, 충남 태안 출생) + 그대가 있음으로 어떤 이름으로든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 아픔과 그리움이 진할수록 그대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별과 바다와 하늘의 이름으로도 그대를 꿈꾼다 사랑으로 가득 찬 희망 때문에 억새풀의 강함처럼 삶의 의욕도 모두 그대로 인하여 더욱 진해지고 슬픔이라 할 수 있는 눈물조차도 그대가 있어 사치라 한다 괴로움은 혼자 이기는 연습을 하고 될 수만 있다면 그대 앞에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싶다 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그대의 언어들 아픔과 비난조차도 싫어하지 않고 그대가 있음으로 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감당하며 이기는 느낌으로 기쁘게 받아야지 그대가 있음으로 내 언어가 웃음으로 빛난다 (박성준·시인, 1986-) +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창가 사이로 촉촉한 얼굴을 내비치는 햇살같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주며 이마에 입맞춤하는 이른 아침 같은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모카 향기 가득한 커피 잔에 살포시 녹아가는 설탕같이 부드러운 미소로 하루 시작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분히 흩어지는 벚꽃들 사이로 내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봄바람같이 마음 가득 설레는 자취로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메마른 포도밭에 떨어지는 봄비 같은 간절함으로 내 기도 속에 떨구어지는 눈물 속에 숨겨진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영원히 사랑으로 남을 어제와 오늘, 아니 내가 알 수 없는 내일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하·시인, 1962-) + 청혼 저, 잘생기지 못했고 저, 돈도 잘 못 벌고 저, 학벌도 그저 그렇고 저, 집안도 평범하고 저, 말주변도 없지만 저, 당신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제가 변변치 않아서 당신 불행하게 만들까 봐 지금껏 말 못 꺼냈었지만. 이젠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저, 당신을 너무 사랑해 죽을 것 같아 용기를 냈습니다. 부끄럽고 모자란 것 많지만 저, 당신과 함께라면 자신 있습니다. 모든 것 남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은. 하지만 단 한 가지 당신 없이 사는 것은 죽어도 자신 없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것만은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당신에 대한 사랑만은 하늘만큼 땅만큼 많아서 당신이 제 사랑 평생을 누려도 다 못 쓴다는 겁니다. 당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사랑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릴 거고 당신 마음과 영혼을 차례로 사랑하는 데는 평생이 아니라 영원이 걸릴 겁니다. 사랑합니다. 저와 함께 살아주십시오. 그러면 이후 시간 모두를 제 목숨 구해 준 당신을 은인과 연인으로 합쳐 제가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존경하고 사랑하겠습니다. 제발 간청합니다. 목숨 걸고 드리는 간절한 제 청혼을 부디 받아주십시오. (김하인·시인, 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