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동참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 여행
여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떠나는 순간이고
또 하나는
도착하는 순간이다.
만일
도착할 때를
계획한 시간과 일치시키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라.
+ 핀셋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해산의 고통은
더 이상 잃을 것밖에 없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안겨다준다.
역사는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폭력은
착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피착취자들 역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싸움을 하는 자는 범죄자다.
그런 자는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
+ 개인 이기주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오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개인 이기주의다!
그것은 감기 바이러스와 같아
늘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전염시킨다.
전염 경로인 공기와 물을 없앨 수도 없다.
마음을 개조시키는 오직 정신혁명뿐이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무기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만능 열쇠처럼 어떠한 것도 열 수 있다.
+ 말의 힘
나는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 편지 - 아버지에게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저를 부릅니다
레닌의 말들이
절절이 울려오는
쿠바의 그 풍광으로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아버님,
저는 지금
아바나로 갑니다
+ 편지 - 부모님께
내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의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때로 헛된 고생도 했지만,
바로 그 와중에서
나를 영원으로 이끄는
한 여자를 만나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죽음을
어떤 경우에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 결정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는
천식이 아주 심할 때다
그 때가
내가 가장 신중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 희망
게릴라로 싸우던 동안에는 물론
심지어 지금까지도
카스트로의 이야기는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무기를 방기한 게릴라로서의
지불해야 할 대가는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적과 직접 부딪쳐 싸울 경우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무기뿐이다.
그런데 그 무기를 버리다니!
그것은
처벌받아 마땅할 범죄다.
단 하나의 무기,
단 하나의 비밀,
단 하나의 진지도
적들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쿠바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껴졌다.
+ 갈증
날씨가 흐리고 슬픈 날이다
목이 말라서 카라코레빵으로 갈증을 달랬다
갈증으로 고통받는 목을 잠깐씩 속이는 것은
정말 할 짓이 못된다
그래서 파블리토가 권총을 차고
사냥꾼 하나와 물을 찾으러 갔다
그러나
돌아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대원들이 찾아 나섰지만
끝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진장 노력하며 견딜 만큼 견디다가
어쩔 수 없이 암말 한 마리를 잡았다
갈증으로 온몸이 바싹 말라가다 보면
배고픈 것은 차라리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도 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 바다
보름달이 바다에 그림자를 비추고
파도가 은빛으로 부서지며 철썩거렸다
우리는
바닷가 모래 위에 앉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바다를 언제나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항상 가장 좋은 충고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이다
+ 질투 -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날마다 피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자
내 몸을 걱정하던
한 연약한 매춘부의 위로의 키스가
문득,
여행 떠나오기 이전의
내 잠자던 기억을 괴롭혔다
모기떼가 잠들지 못하게 하던 그날 밤
비록,
이제는 아득한 꿈이 되어버린
치치나를 생각했다
끝나버린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웠기에
씁쓸함보다는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치치나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키스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로운 청혼자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을 그녀의 집으로 날아가
깊은 밤의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내 머리 위의 거대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 괴테 전기
내 중대에 간호병으로
새로 들어온 여성대원
하이디 산타마리아에게
괴테 전기를 빌려 읽었다
기억해 둘 만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해진다."
+ 고통
오늘 전투에서 적군을 사살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심장을 정확히 맞추려 애썼다
적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죽이지 않는 게 좋다.
+ 베일 속의 사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네 개의 하얀 앞니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민중들의 것입니다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 세계의 모든 민중이 권력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이 사회에 나처럼 아주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을 파괴시키는 이 사회에
당신 스스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사내의 말이 밤새도록 내 가슴 깊이 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이 세계를 둘로 나눈다면
난 기꺼이 민중 편에 설 것임을,
그리하여
귀신에 홀린 듯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적진의 바리케이드와 참호를 공격할 것이고
분노를 내뿜으며 무기를 피로 물들일 것이고
내 손에 잡힌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깨부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껏 내 코를 팽창시켜, 유유히
매운 화약냄새와 낭자한 적들의 피 냄새를 음미하리라
그런 다음 또다시 내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다음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성이
또다른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 나환자촌
칼차키에스 계곡
순수한 신앙이 깃든 하얀 교회
그리고 오래된 돌들이 풍기는 향기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으리라
더 있다
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산중에 쓸쓸히 서 있는 오두막
계속되는 굶주림과 수탈
벼룩....
저주받은 것들
사방에 버려진 넝마주이 아이들
허망한 꿈에 젖은 눈동자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영양결핍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아메리카....
나환자들과 맹인들을 치료하며
나병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들과 축구도 하고 산책도 했다
또 사냥도 떠나 짐승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나환자촌을 떠날 때
그들이 뗏목을 만들어주었다
그 뗏목에 "맘보 탱고"라고 이름 붙였다
또 송별 파티도 열어주었다
비가 내렸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기슭의 나환자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손을 흔드는 아마존 밀림 속의 맹인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 체 게바라에 대한 평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고
쿠바에서 싸우다가
볼리비아에서 죽은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다."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 철학자)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라고 시인 엘뤼아르는 말했다.
별이 있는 꿈은 깨어 있는 꿈이다.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체 게바라는 한번도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다.
(장 코르미에·『체 게바라 평전』 저자)
"체 게바라의 죽음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대통령)
+ 체 게바라의 유골을 보며
볼리비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체 게바라의 유골 사진이 신문에 나왔다.
휑한 두개골과
앙상한 갈비뼈와 쓸쓸한 두 다리
세상의 모든 뼈들처럼
외롭고 무섭고 서글퍼 보인다.
어디에도 남아메리카를 열광시키고 긴장시키던
혁명가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영혼은 살에 있다가
바람이 되는가 구름이 되는가.
사람들은 살을 버리고서야
인종과 계급과 신분을 떠나서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가.
세상의 모든 뼈들과 별다를 것 없는
체 게바라의 유골을 보며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산을 본다.
(차옥혜·시인, 1945-)
* 체 게바라(Che Guevara, 혁명가, 1928,6.14-1967,10.9)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사르트르)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는 위대한 혁명가이자 가슴속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서정을 품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집시 생활과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소포클래스, 랭보, 세익스피어에 심취했고 잭 런던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글귀를 암송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의대를 졸업한 후 보다 더 넒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나환자촌들의 삶과 궁핍한 농민들의 현실을 목격한 다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 후 쿠바로 건너간 그는 카스트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투쟁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총알이 빗발치는 게릴라 전투기간 동안에도 그의 배낭 속에는 언제나 괴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네루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않았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 기록과 그 기록 곳곳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간결한 시(詩) 같은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그만큼 그의 역사와 민중에 대한 애정은 뜨거웠다.
그리고 쿠바 혁명 성공 이후, 또다시 게릴라복으로 갈아입은 체 게바라는 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기보다는 고통받는 민중의 편을 택하여 볼리비아 밀림으로 들어가 혁명운동을 이끈다, 아내와 지식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쿠바의 권력도 모두 반납한 그는 자신의 순수한 초심을 지키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불과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산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