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시 모음> 막스 쟈콥의 '지평선' 외 + 지평선 그녀의 흰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습니다. (막스 쟈콥·19세기 유태계 영국 출신 프랑스 시인) + 지평선 이 땅이 저렇게 날마다 먼 길 걸어 하늘로 오르는 걸 보니 내가 죽어 땅 속으로 가도 사람들은 나를 하늘나라에 갔다 하겠구나 (양전형·시인, 제주도 출생) + 지평선 이 눈이 끝나는 곳에서 그 마음은 구름이 되고, 이 말이 끝나는 곳에서 그 뜻은 더 멀리 감돈다. 한 세상 만나던 괴롬과 슬픔도 그 끝에선 하나로 그리움이 되고, 여기선 우람한 기적도 거기선 기러기 소리로 날아간다. 지나가 버린 모든 시간, 잊히지 않는 모든 기억, 나는 그것들을 머언 지평선에 세워 두고 바라본다. 노을에 물든 그 모습들을. (김현승·시인, 1913-1975) + 지평선이 부르는 곳 하늘과 땅이 만나 황금들을 이룬 곳 김제평야 넓은 들 세상으로 열리고 벼고을 인심으로 민족을 살찌운 땅 지평선을 보려거든 김제시로 오세요 (정군수·시인, 1945-) + 소멸의 지평선 희디흰 소멸의 지평선 호올로 솟아오르는 꽃대를 보아라 오오, 흔들린다. 출렁인다. 환하게 열리는 희디흰 꽃봉오리 허공엔 어느 빛을 몰고 오는 흰나빈가 꽃잎에 스치면 눈부셔라 神의 속눈썹! (장경기·시인, 1960-) + 지평선만 있데요 거기에는 지평선만 있더라 달려가다 기가 막혀 죽을지도 모르는 고꾸라질 듯 고꾸라질 듯 지평선을 베고서 아득히 하나님이 누워 있더라 거기에는 바위산만 있더라 만년설 얼음산 계곡을 타고 아찔하게 하나님이 내려오고 있더라 그러다가 거기에는 산림과 호수 가도 가도 산림과 호수밖에 없더라 나는 경건하게 모자를 벗었지 그렇게 하는밖에 도리 없었지 지구 위에 있는 나라 캐나다 캐나다는 대체로 그러하더라 이만 저만 넓어야지 잘은 모르겠더라 (이향아·시인, 1938-) + 지평선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선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스밀 수 있는가 내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 낮과 검은 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김혜순·시인, 1955-) + 애증(愛憎)의 지평선 사랑 . . 언제면 그 실체를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을까? 죽기 직전? 누군가 그러더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나 일에 선착순을 매겨도 좋다고 존재 . . 제기랄이다 눈뜨면 열리는 시간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욕망 . . 개꿈이다 가질 수 없는..... 온전히 비울 수 있을까? 의식을 좀 먹고 누룩처럼 부풀어 허무를 지향하는 염병할 놈 진리 . . 잃어버린 자궁이다 숨죽여 고요하지만 살아 숨쉬는 무형의 선(善) 유린되는 의식 앞에서도 그저 살아내야 한다는 것 진실 . . 만고강산이다 어느 곳에나 있지만 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맨 얼굴이 그리운 시절이다 애증 (愛憎) . . 그것이야말로 변할 수 없는 삶의 잠언이 아닐까? 실존하는 모순과 감정의 기복으로 흐르는 어쩔 수 없어 서글프기만 한 (고은영·시인, 1956-) + 지평선 저 멀리 땅의 끄트머리 하늘과 맞닿아 있네 땅이 하늘로 오르고 하늘이 땅을 품어 둘이 슬며시 하나 되네. 꽃 피고 낙엽 지는 지상에서 한 발 한 발 디디어 가는 가난하고 여린 내 목숨의 끝도 해와 달과 별 뜨고 지는 저 하늘과 맞닿아 있을까.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