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녹차를 마시며' 외 +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팔달산 돌아 내려오다가 녹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시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사랑을 생각한다 우리는 참 행복했구나 새들처럼 포근했구나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따뜻했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한다 (윤수천·시인, 1942-) + 녹차를 마시며·2 너를 마시며 견디는 법을 배운다 달콤함도 요사함도 가지지 않은 네가 무슨 특별한 위안을 건네줄까만 소리내지 않고 걷는 아둔함과 그 아둔함의 정직으로부터 오는 내밀의 고요는 꿀벌의 밀랍 같은 비밀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너를 마시며 견디며 꿈을 꾸는 법을 배운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내지 않았던 조선 여인네의 향기가 네게 있으니 안으로 잦아드는 법을 배우면 은밀한 그들만의 풍요로움이 찌들은 가슴도 데워 덥히리 너를 마시며 견디며 숨을 쉬는 법을 배운다 견디며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홍수희·시인) + 녹차를 마시며 햇볕 쏟아지는 창가 차 한 잔을 놓는다 사람이 그리운 마른 잎의 뜨거운 헌혈 푸른 산바람 햇살과 별빛 이슬의 향기 두 손으로 받들어 마시면 갇혀있던 언어가 녹아 내린다 혈관 속 미로를 따라 푸른 피를 내 몸에 붓는다 (송연우·시인, 경남 진해 출생) + 녹차를 마시며 따스한 솔향처럼 피어오르는 녹차 한 모금에 세파에 찌들은 마음을 녹이고 혀끝으로 느껴지는 녹차 두 모금에 삶에 지친 마음을 내리고 따스하게 폐부에 흐르는 녹차 세 모금에 배려와 나눔의 향기 퍼짐을 보았고 좁은 내 마음에 생기가 돌고 남 위해 손 내미는 착함도 내 속의 미혹이 밝아짐도 느낀다. (박태강·시인, 1941-) + 녹차를 마시며 아침 쏟아지는 소리 은은한 향기 바람결에 묻어 온 풍문 하나 선홍빛 자국 남기고 주전자는 절절 끓어 누굴 기다리는가 어디선가 낯선 욕심 다투는 소리 창 밖 안개는 걷히지 않고 먼데서부터 오는 수 천년의 빛 오다가 무릎 꺾인 채 이슬 속에 갇히다니 아무래도 내 울음은 깊이 접어 두어야 되겠구나 저 많은 사연들 앞에 풀어놓은들 풀어놓은들 들릴 일도 없겠거니 온 세상 다시 세워내는 햇살 앞에 가슴 열어 젖힌들 향에 묻혀 향에 묻혀 보일 일도 없겠거니 (유창섭·시인, 1944-) + 녹차 바알갛게 서산에 해 지다. 정갈한 석간(石間) 수(水) 끓는 물 가만히 기다리다, 검게 둘둘 말린 가녀린 엽신(葉身)의 열반을 지켜본다. 포근한 영면(永眠) 속에 스스로 몸을 푸는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영혼! 오늘도 두 손으로 따사로운 산(山)을 마신다. (유응교·건축가 시인, 전남 구례 출생) + 녹차 한 잔 어느 깊은 산골짜기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햇살을 담고 청솔바람에 나부끼어 머루향내 묻어나는 마을 사람들의 숨결이 온몸으로 맑게 맑게 퍼져 갑니다 이대로 그대에게 다가가 손 내밀고 싶습니다. (이정자·시인, 1964-) + 꽃잎 녹차 녹차에 띄운 야생화 흰 꽃잎이 다섯 어인 업보 날아와 스치는 눈길 따라 닿았길래 하늘 아래 스미어 물 위에 떠돌다 하얀 손에 담기어 구름다운 찻잔에 다소곳이 남녘 부푼 들맛 정토 내린 노을맛 입안 가득 번지는 인연의 향기여 아, 가슴 따라 미어지며 꽃잎 타고 떠가네 햇빛 눈물인 듯 그리움 보석인 듯 (현상길·교사 시인, 1955-) + 녹차송(綠茶頌) 녹차를 마시면 피가 맑아지고 군살이 빠지고 눈빛이 흰 연꽃처럼 서느러워지느니 ……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거든 목욕물 데워 피로를 풀게 하고 우선 한 자의 녹차를 권하여라 그러면 그것이 더없는 대접이리 벗의 얼굴이 보름달인 양 환히 빛날 쯤엔 거문고 한 가락 안 탈 수 없으리 좋은 차와 벗과 거문고와 …… 그밖에 더 무엇을 바라리오 그저 안온하고 흡족할 따름이리 (박희진·시인, 193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