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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묵상 시 모음> 정연복의 '죽음에게' 외
날짜
:
2014년 11월 26일 (수) 4:17:33 오후
조회
:
1664
<죽음 묵상 시 모음> 정연복의 '죽음에게' 외
+ 죽음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시시각각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너
우리 둘 만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구나.
너의 이름만 알 뿐
너의 얼굴도 모르지만
너의 품이
얼음장같이 차가운지
혹은 햇살같이
따뜻할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이루어질 우리의 만남.
내 삶에
마침표를 찍어줄
네가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으니
이제 너를 맞이할 준비
차분차분히 해야 하겠구나.
+ 죽음에게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는
너와의 단 한번의
숙명적인 만남이기에
피하지 않겠다
피할 도리도 없다
언젠가 꼭 찾아올 너를
기꺼이 맞이하는 것밖에는.
사실 네가 두렵기도 하지만
왠지 기대도 된다
네가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는 그 날은
지상에서의 온갖
기쁨과 슬픔의 끝일 테니까.
그래도 네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좋으련만
이것도 희망 사항일 뿐
너는 너의 속도로 찾아오겠지.
+ 사형수
사람은 누구라도
사형수입니다
위엄 있는 왕도
비천한 거지도
세상에서 잘난 사람도
볼품없는 사람도
모두 예외 없이
사형수의 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똑같은 사형수입니다
사람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죽음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빈틈없는 자연 법칙입니다
종교도 철학도 과학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음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죽음을 향해 다가서는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죽음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은
하나로 맞닿아 있어
사람은 살아가는 그만큼
또 죽어간다
그래서 인생살이는 슬프고
또 절절한 뜻이 담기는 거다.
만일 죽음이 없어서
끝없이 살아야 한다면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또 힘겨울 것인가
죽음은 큰 슬픔인 동시에
크나큰 축복이기도 한 것이다.
삶의 열정을 뜨겁게 불태우되
죽음의 그림자를 기억하라
내일은 내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니
오늘 이 순간에 충실하라
모든 괴로움의 깨끗한 종말인
죽음이 머지 않았으니
괴로워도 절망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라.
+ 지는 꽃의 말
나는 이제 죽어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요
그런데 나는 죽지 않아요
누군가의 맘속에 살아 있을 테니까요
나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평온한 마음으로
나의 죽음을 받아들여요
한번 피었으니
한번은 지는 것!
이 자연스러운 생명의 이치에
고분고분 따라요
+ 죽음
나의 탯줄을
가위로 손수 잘라주셨고
추운 겨울날
마당 빨랫줄에 널어두었던
이불 홑청 거둬 가지고
현관 앞 계단에서 뒤로 넘어져
여든 셋의 연세로
고단한 생을 마감하시던 그날도
내게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주셨던
내게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화신이셨던 외할머니.
입관을 마치기 직전
최후의 입맞춤을 했던
외할머니의 볼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생명의 온기가 떠나간
그 쓸쓸한 자리.
+ 삶과 죽음을 감사하는 기도
제게 생명 주심을
진실로 감사 드립니다
생명은 산더미같이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보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한세월
살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세상은 당신이 지으신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곳
이곳에서 살아 숨쉬는 것은
더없이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제게서 언젠가 생명
거두어 가실 것을 감사 드립니다
생명은 꽃과 같아서
피고 또 지는 것
죽음으로써 저는
꽃처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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