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잎새들 무성한
찬란한 세 계절에는
스치는 바람에도 뒤척이며
몸살을 앓더니
겨울의 문턱에서
그리도 빛나던 잎새들
털어 내고서는
생명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너
떨칠 것 미련 없이 떨치고
이제 생명의 본질만 남아
칼바람에도 미동(微動) 없이
의연한 모습의
오! 너의 거룩한 생애
+ 겨울나무
나무도 엄연히
살아 있는 목숨인데
겨울 추위가
어찌 고통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인내심으로
버티는 거지.
쌓인 폭설에
덩치가 큰 나무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걸 보면
나무라고 해서
천하무적은 아니지.
긴긴 겨울
모진 북풍한설
온 힘을 다해
눈물겹게 견디면서
새봄의 연초록 새순을
몸 속에 기르는 거지.
+ 겨울나무 속 꽃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봄이 되어
비로소 꽃 피는 게 아니라
겨울나무 속에
꽃은 이미 들어 있다
겨울 너머 오는 봄은
겨울과 맞닿아 있고
겨울 지나 피는 꽃은
겨울나무와 연이어 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목(裸木)의 온몸에는
수액이 돌아
봄의 연둣빛 이파리를
잉태하고 있을 터.
+ 나무의 동안거(冬安居)
겨울 날씨가
제아무리 춥다고 해도
하늘 향해
온몸 단정히 곧추세우고
잠잠히 동안거에 든
나무를 어쩌지는 못하리.
긴긴 겨울 너머
새 봄이 올 때까지
꿈결같이 눈부신
연초록 새순이 돋기까지
북풍한설 속에서도
우뚝 선 채로
끝내 견디어 내리라는
저 나무의 고요한 신심을
세상의 그 무엇도
흔들어댈 수는 없으리.
(2014.11.20)
* 동안거(冬安居): 겨울인 음력 시월 보름날부터 이듬해 정월 보름날까지, 승려들이 일정한 곳에 머물며 도를 닦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