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모음> 정연복의 '꽃의 서시' 외 + 꽃의 서시 어제는 피어 있던 꽃 오늘은 지고 없다 언젠가 그 어느 날에 어제는 세상에 있던 나 오늘은 가고 없겠지. 지상에 머무는 동안 꽃같이 살아야겠다. + 낙엽 서시 한줄기 바람이 불어 낙엽 한 장 가벼이 날리더니 고요히 땅에 떨어진다. 한철 살면서도 자연의 순리 따라 고분고분 순한 모습이더니 생의 끝마침도 참 조용하고 깨끗하다. 지상에 잠시 발붙여 사는 동안 나도 저렇게 순하게 살아가다가 군말 없이 총총 사라지리라. + 희망 서시 어둠 속에 별이 빛난다 하늘이 깜깜하니까 별이 반짝 빛난다 밝음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빛이다. 이따금 나는 어둠 속에 갇힌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내 가슴속 희망의 별이여 이제 너의 빛을 비추어다오. + 오늘을 위한 서시 오늘도 동터 온 하루 그것은 은총. 어둠을 사르는 밝은 햇살 빛나는 세상 높푸른 하늘 아래 꽃 피는 땅 위에 이렇게 나의 심장 힘있게 뛰고 있으니 오늘 하루를 내 생애 최후의 날처럼 살자. 어제까지의 괴로움과 슬픔 바람에 날려보내고 그냥 좋은 생각만 하면서 몸도 마음도 가볍게 오늘의 빛 속에 새로운 기쁨을 만들어 가자. + 사랑을 위한 서시 지상에서 짧은 한 생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내 주변의 단 몇 사람이라도 아무런 대가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하리라 오직 그 사랑 하나를 삶의 참 기쁨으로 삼으리라. + 서시(序詩) 이 몸 흙으로 돌아갈 날 날로 가까이 있으니 '나'란 존재 까맣게 잊혀져도 아쉬움 하나 남지 않도록 앞으로 나는 더욱 낮아지고 낮아져야 하리 들꽃처럼 낙엽처럼. 이 몸 불길 속에 한 줌 재 될 날 그리 멀지 않았으니 활활 태우고 태워도 덜 아프도록 앞으로 나는 더욱 작아지고 작아져야 하리 티끌같이 먼지같이. 그 무엇 되고 싶다거나 그 무엇 하나쯤은 남기고 싶었던 욕망의 세월 지나 이제 나는 그저 내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리 바람 되어 구름 되어.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